[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이번 월드컵은 '전직 주장' 기성용(33·FC서울) 없이 16년만에 치르는 대회다. '기캡'으로 불린 기성용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역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에 공헌했고, 2014년 브라질월드컵과 2018년 러시아월드컵도 누볐다. 2019년 대표팀에서 은퇴한 기성용에게 월드컵은 떼려야 뗄 수 없다.
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이 2022년 카타르월드컵 최종 엔트리를 발표하기 전, '현직 주장' 손흥민(토트넘)이 안와 골절상을 입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5일, 구단 행사가 열린 서초초등학교에서 만난 기성용은 "십몇 년간 월드컵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번엔 월드컵을 집에서 치킨을 뜯으며 볼 생각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후배들을 응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성용이 또렷이 기억하는 '첫 월드컵'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이다. 막 축구선수의 꿈을 키워가던 열 살 꼬마는 새벽같이 일어나 지네딘 지단의 플레이를 지켜봤다. 기성용은 "멕시코전은 내가 라이브로 본 첫 한국 경기였다. 우리가 골을 넣었을 때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2002년 한-일월드컵은 호주(유학)에서 봤는데, 경기장에 꽉 찬 팬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월드컵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돌아봤다.
기회는 빠르게 찾아왔다. 막 스물을 넘긴 신예 미드필더였던 기성용은 남아공월드컵에서 주전 미드필더로 조별리그 3경기와 우루과이와의 16강전까지 모두 소화했다. 기성용은 "그리스와의 첫 경기 앞두고는 잠을 잘 못 이뤘다. 경기장 근처에 부부젤라 소리와 함께 한국 분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보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몸을 푸는데 분위기가 친선경기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이게 진짜 월드컵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막상 경기에 돌입한 뒤로는 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때는 좌우 앞뒤에 믿을 만한 형들이 있었다. (베이징)올림픽부터 호흡을 맞춘 (김)정우형은 '형이 뒤에서 다 커버할테니 하고 싶은 거 해라'고 얘기해줬다"고 했다.
대표팀은 브라질과 러시아에서 세계 축구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기성용은 "두 대회 모두 준비 과정부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지금 대표팀이 4년 동안 같은 감독 체제로 같은 철학을 갖고 앞으로 나아갔다면, 그땐 월드컵을 1년도 안 남겨두고 감독과 선수가 바뀌었다. 브라질 때는 월드컵을 경험한 선수들이 많이 없었다. 그런 경험은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러시아 때는 3패만 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많은 선수들이 부상을 당해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기성용의 '마지막 월드컵'은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최종전이었던 독일전으로 남았다. 대회 도중 부상을 당한 기성용은 벤치에서 한국이 독일을 꺾는 '카잔의 기적'을 목격했다. 당시 손흥민의 인터뷰 영상에는 기성용이 홀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담겼다. 그는 "최종예선 때부터 많은 무게를 짊어졌던 것 같다. 많은 힘겨움이 있었다. '아, 이게 마지막 월드컵이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눈물이 났던 것 같다"고 말했다.
기성용은 같은 팀 소속인 나상호 윤종규를 비롯해 첫 월드컵을 앞두고 떨고 있을 후배들에게 조언해 달라고 하자 "처음 10~15분이 중요하다. 자신감을 빨리 찾을 수 있도록 나만의 루틴을 경기에 적용시켜야 한다. 그래서 첫 패스, 첫 드리블, 첫 공격, 첫 수비에 집중해 달라고 말해주고 싶다"며 "아무래도 손흥민 김민재 등에게 포커스가 맞춰질텐데, 그런 분위기에선 부담감이 덜한 어린 선수들이 사고를 칠 수 있다"고 말했다.
절친한 후배 손흥민은 카타르에서 세 번째 월드컵을 맞이한다. 누구보다 손흥민이 느낄 중압감을 이해할 기성용은 "많이 아플텐데... 흥민이는 책임감이 강한 선수다. 아마 (마스크를 끼고서라도)의지를 보일 것이다. 안타깝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며 추가 부상 없이 월드컵을 잘 마무리하길 바랐다. 카타르에서 지켜보고 싶은 선수로는 미드필더 황인범을 골랐다. "서울에서 같이 공을 찰 때 즐거웠다. 워낙 성실하고 재능이 있는 선수라 월드컵에서도 기량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고 본다. 나와 같은 포지션이기도 해서 기대가 많이 된다"고 말했다.
한국이 12년만에 원정 16강 이상의 성적을 거두기 위해선 12년 전 한국의 발목을 잡은 우루과이를 넘어야 한다. 기성용은 "첫 경기인 우루과이전 결과가 중요하다. 그 경기에 따라 조별리그 양상이 바뀔 수 있다"며 "우루과이가 좋은 선수가 많고, 남미 특유의 끈끈한 플레이를 펼치지만, 우리 대표팀 능력이라면 상대를 충분히 괴롭힐 수 있다고 본다. 대등하게 싸울 것 같다"고 전망했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