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프로배구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다. 체육관 뒷편에선 둘도 없는 친구지만, 코트 위에 양보란 없다.
"친한 친구지만, 카타리나를 뽑진 않겠다."
지난 10월 V리그 미디어데이. 뜻밖에도 단호했던 흥국생명 옐레나(25)의 선택이다.
질문은 '올시즌 가장 잘할 것 같은 외국인 선수'. V리그 첫 시즌인 도로공사 카타리나(23)는 "상대해본 선수가 옐레나밖에 없다. 같은 팀에 김연경도 있으니까, 아마 흥국생명이 가장 강한 팀이 아닐까"라며 옐레나를 꼽았다.
하지만 2년차인 옐레나는 한층 신중하고 단호했다. 그는 "카타리나와는 친한 친구지만, 최근 몇 년간 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비시즌 연습경기도 하지 않았다"면서 지난 시즌 정규시즌 1위를 이끌었던 현대건설 야스민을 선택했다.
옐레나와 카타리나는 동향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출신 선수다. 옐레나는 국가대표로도 뛰고 있다.
세르비아리그에서 뛸 때부터 친분이 있었고, 유럽도 아닌 한국까지 와서 만난 동향 사람이다. 감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13일 흥국생명-도로공사전에 앞서 두 사람은 따로 만나 이야기꽃을 피웠다. 옐레나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영상 통화를 걸어 "한국에서 카타리나를 만났다"고 소개했고, 카타리나도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며 두터운 친분을 과시했다.
이날 경기에서도 명승부를 펼쳤다. 옐레나는 올해 김연경과 함께 뛰면서 지난 KGC인삼공사 시절에 비해 위력이 배가됐다. 권순찬 감독의 코칭 덕분에 스윙폼을 가다듬으면서 더 파워풀해졌고, 서브도 플로터 대신 스파이크 서브를 때리고 있다. 김연경과 이주아 등 공격 옵션이 많은 팀 특성 덕분에 공격 점유율도 최대 30% 초반 정도로 관리되고 있다. 고비 때마다 김연경 대신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는 경우도 많다.
이날도 옐레나는 1~3세트 꾸준한 활약을 펼쳤고, 4세트에는 체력 안배차 빠졌다가 5세트 들어 김미연과 함께 상대 코트를 맹폭, 팀의 3대2 승리를 이끌었다.
카타리나 역시 지난 GS칼텍스전 이후 최고의 경기를 펼쳤다. 도로공사 리시브가 흔들린 1~2세트 그나마 공격에 숨통을 틔웠고, 3~4세트에는 팀의 대추격전을 이끌었다. 하지만 5세트 들어 체력 저하를 드러내며 아쉬운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김종민 도로공사 감독은 카타리나에 대해 여러차례 아쉬움을 토로한 바 있다. 이날도 "밖에서 보면 만족스럽지 않은데 기록은 좋더라.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은 확실한데, 그 최대치가 어디냐가 관건"이라고 평했다. 이어 "그래도 자기 역할을 열심히 해주고 있다. 또 선수들과 잘 융화되는 점도 높게 평가한다"고 덧붙였다.
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