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어떤 어려운 타구도 쉽게 처리하던 국민유격수 박진만.
전성기 시절, '어떤 공이든 와라, 다 잡아줄게' 하는 충만한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 '타구가 나한테 안 왔으면' 하는 생각을 딱 두차례 했다. 한번은 현대 시절 수중 혈투로 치러진 2004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9차전 9회.
또 한번은 2008년 8월23일 우커송구장에서 열린 베이징올림픽 쿠바와의 결승전이었다. 3-2로 앞선 9회말 1사 만루. 정대현이 마운드에 올랐다. 타석에는 현재 메이저리그 휴스턴에서 활약중인 6번타자 율리에스키 구리엘.
스트라이크 2개를 흘려보낸 구리엘은 정대현의 바깥쪽 먼 공을 긴 팔을 쭉 뻗어 당겼 쳤다. 병살을 위해 2루 쪽으로 살짝 옮겨 있던 유격수 박진만이 2루수 고영민에게 물 흐르듯 연결해 6-4-3 더블플레이를 완성했다. 대한민국 야구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올림픽 첫 우승의 감격적 순간이었다.어느덧 14년의 세월이 흘렀다. 감독 대행을 거쳐 삼성 라이온즈 16대 사령탑에 오른 박진만 감독은 그 때 그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진심 제발 나한테 오지 말라고 기도했어요. 그런데 딱 하는 순간 공이 내 앞으로 오는거야. 그 순간에는 정말 어떤 생각도 들지 않더라고요. 머리는 그냥 하얘졌고, 그냥 몸이 반응했던 것 같아요."
그를 최고의 유격수로 만든 건 우상이던 명 유격수 출신 현대 김재박 감독이었다. 신인 시절부터 정진호 코치를 붙여 주구장창 수비 훈련만 시켰다. 단내 날 때까지 계속되는 무한 반복 훈련.
"신인 때부터 시작해 4년 동안 오로지 수비 훈련만 시키셨어요. 솔직히 재미있는 타격 훈련도 하고 싶었는데 수비만 해 답답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수비에 딱 자신감이 생기니까 공격도 자연스레 잘 되기 시작했어요."
결정적인 순간 머리가 아닌 몸이 반응하게 된 것도, 오늘의 명 유격수 출신 사령탑을 탄생시킨 것도, 바로 그 당시에는 지옥 같았던 무한 반복 훈련 덕분이었다. 현대 시절 김재박 감독이 달던 70번 등번호를 달고 삼성 감독을 시작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현역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는 삼성 라이온즈 10년 미래를 이끌 유망주들에게 몸이 먼저 반응할 정도의 단단한 기본기를 심어 주겠다는 각오다.
삼성은 2일 일본 오키나와로 출국한다. 정식 감독 취임 후 첫 마무리 캠프. 24일 간의 캠프는 지옥훈련이 예고돼 있다. 체력적으로 따라오지 못하는 낙오자는 바로 중도 귀국이다. 베테랑 주축 선수들을 모두 제외하고 젊은 유망주로만 명단을 꾸린 이유다.
"제가 이번 마무리 캠프를 통해 만들어 주고 싶은 것이 바로 결정적인 순간 머리가 아닌 몸이 반응할 수 있는 수비 기본기에요. 힘들어도 기초를 탄탄하게 닦아놓고 오면 겨우내 스스로 몸을 만들어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박진만 감독은 취임 일성으로 선수들을 향해 "화려함보다 기본기에 충실한 플레이, 기본기 안에서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말고 적극적이고 과감한 플레이 보여주길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그가 추구하는 야구의 밑그림을 보여준다.
과연 이재현 김영웅 조민성 김지찬 김동진 등 삼성 내야를 이끌어갈 미래들에게 이번 마무리 캠프는 어떤 전환점이 될까. 힘들겠지만 땀은 정직하다. 기본기 측면에서 큰 성장감을 느끼고 돌아올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일본 행 발걸음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