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천재 타자'로 불리는 필라델피아 필리스 브라이스 하퍼는 생애 첫 월드시리즈를 앞두고 있다. 그는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만 끼면 메이저리그에서 이룰 것은 다 이루는 셈이 된다.
벌써 두 차례 MVP에 선정됐고, 2031년까지 누적 연봉이 3억6000만달러가 넘으니 돈도 벌만큼 벌었다. 올스타에 7번이나 뽑혀 팬들의 사랑도 듬뿍 받았다고 봐도 된다. 여기에 우승 트로피 하나만 얹으면 그야말로 성공한 메이저리거로 역사에 남게 되고, 언젠가는 명예의 전당에도 입성할 수 있다.
하퍼와 비교하면 또 다른 '천재 타자'는 불운하다. 메이저리그 12년 동안 가을야구를 겨우 한 번 해봤으니 말이다. LA 에인절스 마이크 트라웃이다. 돈, 명예, 인기, 그리고 성적 모든 면에서 하퍼를 앞서지만 포스트시즌 경력은 2014년이 유일하다. 그해 에인절스는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1위로 가을야구 무대에 섰으나,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디비전시리즈에서 3패를 당하고 '광탈'했다. 그해 정규시즌 MVP였던 트라웃은 3경기에서 12타수 1안타로 고개를 숙였다. 8년 전에 있었던 유일한 가을야구의 기억이다.
AP가 26일(이하 한국시각) '하퍼는 월드시리즈라는 감격적인 순간에 도달한데 반해 트라웃은 계속 기다리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같은 두 선수의 상반된 처지를 조명했다.
AP는 '두 선수의 커리어는 10대 시절부터 밀접하게 이어져 왔다.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는 하퍼를 야구가 선택한 선수, 트라웃을 미키 맨틀의 현신이라고 칭했다'며 '그들은 빅리그에 오르기도 전에 불가능할 것 같은 엄청난 기대를 받으며 차세대 슈퍼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실제 그들은 예고대로 훌륭한 선수가 돼 30대 초반의 성숙한 야구선수로서 명예의 전당으로 가는 길을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둘은 2012년 나란히 양 리그 신인왕의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트라웃은 2014년, 2016년, 2019년 세 차례, 하퍼는 2015년과 2021년 두 차례 MVP에 각각 올랐다.
AP는 '누가 더 훌륭한 선수인가에 관한 논쟁에서 트라웃이 거의 이겼지만, 하퍼는 트라웃의 경력에서 없는 한 가지를 이제 얻으려 한다. 10월의 시그니처 순간이다. 일요일에 그가 친 홈런 덕분에 필라델피아는 휴스턴과의 월드시리즈 여정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필라델피아는 지난 24일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5차전에서 하퍼의 역전 투런홈런에 힘입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4대3으로 꺾고 월드시리즈행을 결정지었다.
에인절스는 올시즌에도 승률 5할은 물론 포스트시즌에 실패했다. 5월 중순까지는 지구 1,2위를 다투며 가을의 꿈을 키웠지만, 5월 하순부터 6월 초반까지 14연패를 당해 나락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하필 그 기간 필라델피아의 홈인 시티즌스 뱅크파크에서 3연전을 내주는 뼈아픈 스윕을 당했다. 트라웃은 11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당시 하퍼는 LA 타임스에 "모든 선수들이 그런 슬럼프를 겪는다. 나도 그런 적이 있다. 트라웃은 역대 최고의 선수다. 시즌 말미에 가면 누구도 그가 슬럼프를 겪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타율 3할에 40홈런을 칠 거니까"라고 했다. 하퍼의 예상은 적중했다. 트라웃은 타율 0.283, 40홈런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러나 팀이 위기에 빠졌을 때나 중요한 시기에 트라웃은 슬럼프 혹은 부상 중이었다. 전반기 막판에는 허리 부상을 입고 전력에서 이탈했다. 그런데 8월 20일 복귀 후 갑자기 MVP다운 활약을 보여주며 결국 40홈런에 도달했다.
트라웃은 10년 3억6000만달러 계약이 2030년 끝난다. 그때까지 에인절스가 포스트시즌에 나갈 수 있을 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할 수 있을 알 수 없지만, 지금과 같은 구단 운영방식으로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트라웃은 "난 페리 단장이 우리를 이기는 팀으로 만들 것으로 믿는다. 우리가 올해 포스트시즌에 실패한 이후에도 그는 매일 팀을 강하게 만들기 위한 고민을 한다"고 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