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 용 기자] 다 가진 자의 여유인가, 아니면 명장으로서의 본능인가.
KT 위즈는 17일 열린 키움 히어로즈와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2대0 승리를 거뒀다. 1차전 패배를 설욕하고 균형을 맞췄다. 원정에서 1승1패면 나쁘지 않은 결과. 여기에 상대는 원투펀치를 모두 썼고, 반대로 와일드카드 시리즈에서 투수를 썼던 KT는 원투펀치가 나올 차례다. 여러모로 만족스러울 수 있는 결과였다.
중요했던 2차전 승리, 발목 부상을 털고 선취 타점을 만든 박병호의 활약도 눈부셨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경기를 마무리한 신인 투수 박영현이었다.
8회부터 마운드에 오른 박영현은 살떨리는 9회에도 마운드에 올라 거침 없는 투구를 선보였다. 1사 후 야시엘 푸이그에게 홈런성 타구를 허용하기는 했지만, 결과는 아웃이었다. 최고구속 145km의 직구를 겁없이 던지는 모습에서 KT팬들은 쾌감을 느꼈을 듯 하다.
박영현은 유신고를 졸업하고 1차 지명으로 KT 지명을 받은 신인. '최동원상'을 받은만큼 잠재력이 큰 선수지만, 이제 막 프로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긴장감 넘치는 포스트시즌 무대, 그리고 첫 세이브 기회에서 떨지 않고 던진 것만으로 칭찬을 받을만 했다.
그리고 이 선수를,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밀고 나간 이강철 감독의 뚝심도 대단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었다. 마무리 김재윤과 필승조 김민수가 1차전에서 충격적으로 무너졌다. 전문가들은 정규 시즌 막판까지 3위 싸움을 하며 불펜을 소모한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일리 있는 얘기였다. 이 선수들의 힘이 떨어진 게 눈에 보이면, 다른 선수를 써야했다.
하지만 프로야구 감독이 선수 기용에서 새로운 모험을 하는 건, 그 어떤 일보다 힘들다. 기자나, 팬들은 눈에 보기에 컨디션이 좋고 잘할 것 같은 백업, 신인 선수들을 쓰라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현장 감독들은 늘 '애버리지'를 무시하지 못한다. 결국, 해주던 선수들이 못하다가도 확률적으로 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다.
기자가 속단할 수는 없지만, 아마 어제와 같은 상황에서 다른 감독들이었다면 또 다시 마무리 김재윤을 투입했을 것이다. 신인 투수를 내는 게 겁났을 수 있고, 김재윤의 사기 측면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감독은 감독들이 쉽게 할 수 없는 파격적 선택을 했다. 그리고 대성공을 거뒀다. 경기도 가져오고, 박영현이라는 신인 투수까지 스타로 만든 최고의 선택이었다.
이 감독은 지난해 KT를 통합 챔피언으로 올려놨다. 지도력을 인정받아 WBC 감독으로까지 선임됐다. 이번 시즌도 시즌 초반 부진을 떨치고 포스트시즌까지 팀을 올려놨다. 냉정히,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더 높이 올라가지 못한다 해도 위상이 추락할 일은 없다. 다시 말해, 지난해보다는 부담이 덜한 포스트시즌일 수 있다. 그러니 공격적인 선수 투입도 가능하다.
여기에 선수를 보는 눈이 탁월하다는 것을 입증한 결과이기도 했다. 아무리 선수를 키운다고 해도, 무조건 실패할 카드라면 팀 운명이 걸린 상황에서 무조건적으로 밀고나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제 한 경기 경험이, 박영현을 향후 대투수로 만들 수 있는 자양분이 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