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닷컴 이지현 기자] 가수 현미가 60년지기 절친 엄앵란의 근황을 전했다.
9일 방송된 TV CHOSUN '스타다큐 마이웨이'에서는 '60년대 국보급 보이스' 대중가요계 원조 디바 가수 현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조명했다.
1962년 노래 '밤안개'로 데뷔한 현미는 60년을 가수로 살았다. 그는 "원래 가수가 아닌 무용수가 꿈이었다. 1950년대 후반에 미8군 부대에서 김시스터즈를 알게 됐다. 어느날 가수가 펑크를 내서 대신 한 곡을 불렀는데 다음날부터 가수가 됐다"고 이야기했다.
현미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풍부한 성량과 재즈의 감성으로 60년대 최고의 가수로 등극했다. 그런 가운데, 현미는 "내가 그분 덕분에 내가 스타가 되서 잘 산다. 나의 은인이오 스승이오 애인이오 남편이다 생각한다"면서 '천재' 작곡가, 영화음악 감독으로 명성을 떨친 남편 이봉조를 언급했다. "이봉조가 미 8군부대에서 밴드마스터였다"는 현미는 "잘생겼고 나한테 친절했다. 추운 겨울에 자기 양말을 벗어서 나를 신겨줬다"라며 남편을 떠올렸다.
이봉조는 현미의 능력을 단번에 알아보고, 그녀 인생곡 '밤안개'를 선물했고, 이후 두 사람은 많은 작업을 함께하며 사랑에 빠져 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현미는 "26살에 딸 둘이 있는 유부남이더라"고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하지만 이미 현미 뱃속에는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이에 자신을 선택한 이봉조와 두 아들을 낳으며 결혼을 시작했다.
현미는 "다시 (본천에게) 돌려 보내는게 기본이라고 생각했다. (이별 통보 후) 술을 많이 먹고 야구방망이를 가지고 살림을 부쉈다. 추운 겨울이었는데 잠옷바람에 밍크코트 하나 입고 나온게 헤어진거였다"고 밝혔다. 87년 현미와 헤어진 후 건강이 악화 된 이봉조의 영상을 본 현미는 눈물을 흘렸다. 현미는 "그 잘생긴 사람이 말라서 틀니를 보여주며 '내가 이렇게 불쌍하게 살고 있는데 날 안 받아 줄 거냐'... (하더라고요.) 내가 다시 모실 거니까 건강하게 살자고 그랬는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 운명이 그것밖에 안 되었나 보다"라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한편 현미는 가장 힘들었던 순간 그녀에게 빛이 돼준 친구 배우 엄앵란과 만났다. 유방암 투병과 관절 수술로 거동이 불편해진 엄앵란은 방송 활동을 중단하고 4년간 투병의 시간을 보내다 '절친' 현미를 위해 오랜만에 나섰다.
엄앵란을 살뜰하게 챙기는 현미는 만나자마자 지인들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이에 엄앵란은 "누가 죽었단 소리 하지마. 내 차례가 오는거 같아"라며 귀여운 투정을 부렸다.
맛있는 음식 앞에 앉은 엄앵란은 "우리 남편들 살아있을 때 우리가 이렇게 차려줬으면 얼마나 좋아했겠니"라며 울컥했다. 이에 현미는 "남편들 하늘나라 갔잖아. 남편들 있으면 챙기느라 이렇게 못 먹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엄앵란은 근황에 대해 "4년 동안 집에만 있었다. 다리가 아파서"라며 촬영하다 넘어져서 왼쪽 무릎을 다쳤다고. 그는 "절뚝거리면서 나가면 창피하잖아. 창피해서 현미 집에도 안갔다"라고 털어 놓았다.
엄앵란은 지난 2018년 세상을 떠난 남편 신성일을 언급했다. "집에서 아픈 티를 안냈는데, 조용히 혼자 입원했다"면서 "어느날 공기 좋은데 내려가서 산다고 하면서 '방 하나 해줄게 같이 있어요'라고 하더라. 그때 알았다. 같이 가서 살아줬다"고 이야기했다. 특히 "나는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엄앵란은 "국회의원 2번이나 나갔다. 돈이 없어서 주는 대로 다 받아먹었지. 그래서 감옥을 갔다"고 시원하게 밝혔다. 하지만 "면회를 하고 나오는데 간수가 꽃 한 송이를 주면서 '신성일 씨가 주신거다'라고 하더라. 그게 미안하단 소리다"면서 "장미 한 번 보고 하늘 한 번 보고. 창피한 줄도 모르고 막 울었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현미는 "(이봉조에게서) 도망나왔을 때 가장 먼저 찾아 온 사람이 엄앵란이다"라며 데칼코마니 같은 인생을 이어오고 60년지기 엄앵란에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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