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은퇴식 날 모습을 드러낸 KIA 타이거즈 나지완(37), 시원섭섭한 모습이었다.
나지완은 7일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리는 KT 위즈전을 앞두고 은퇴 공식 기자회견을 가졌다. 지난달 중순 현역 은퇴 의사를 표명한 나지완은 이날 은퇴식을 끝으로 정든 그라운드를 떠난다.
타이거즈의 역사에 나지완이란 이름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2008년 2차 1라운드(전체 5순위)로 KIA 유니폼을 입은 나지완은 이듬해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끝내기 만루 홈런으로 타이거즈에 V11 영광을 안겼다. KBO리그 40년 역사에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장면. 나지완은 이후에도 KIA를 대표하는 타자 중 한 명으로 활약하며 팬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2017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도 승부에 쐐기를 박는 스리런포를 터뜨리는 등 '한국시리즈의 영웅' 역할을 했다. 프로 통산 15시즌 1472경기에서 1265안타, 221홈런, 862타점 등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특히 타이거즈 프랜차이즈 최다 홈런 기록(종전 김성한 207개)의 역사를 쓰기도 했다.
홀가분하게 은퇴 소감을 밝히던 나지완은 이날 팬들께 감사 인사를 전하는 과정에서 "나지완이란 선수가 야구를 행복하게 했구나 싶더라. 과분한 사랑을 품에 안고 떠나겠다"며 목이 메이기도 했다.
-은퇴 결심 배경과 시기는.
▶전반기를 마친 뒤 은퇴를 결심하고 구단에 은퇴 의사를 전했다. 내 경쟁력이 떨어졌고, 기회가 더 이상 오지 않을 걸로 봤다. 내가 빠른 결정을 해주는 게 구단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텐데.
▶준비하는 기간 너무 힘들었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은퇴라는 단어를 내밀기 상당히 힘들었다. 점점 어린 선수들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겐 기회가 없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가족들이 눈치를 보는 게 싫었다. 그런 모습이 내겐 상처였고, 빨리 지워주고 싶었다.
-은퇴 결심에서 가장 고민했던 점은.
▶4월 개막전 이후 퓨처스(2군)에 내려가면서 너무 힘들었다. 밝은 모습을 보였던 아내가 몇 시간 동안 펑펑 울면서 '이제 그만하자' 하더라. 가장으로서 가슴이 찢어지지만, 아들이 내 모습을 알아보는 시간이 다가오는 만큼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내에게 '딱 한 번만 더 해보자'라고 말했는데 그 마지노선은 전반기로 정했다. 결국 전반기 뒤에도 반등을 이루지 못하면서 단장님을 찾아가 은퇴 의사를 전했다.
-마지막 야구장 출근이었는데 잠은 잘 잤나.
▶너무 잘 잤다. 낮잠도 잤다(웃음). 너무 홀가분하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게 이런 것이구나 싶더라. 은퇴 의사를 밝힌 뒤 3개월 간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다.
-가장 아쉬운 순간과 기억에 남는 순간은.
▶작년이 가장 아쉬웠다. 주장으로 좋은 역할을 해줘야 했는데 부상으로 5개월을 쉬다 보니 몸이 말을 안듣더라. 그 시즌이 너무 아깝다. 가장 생각나는 시간은 데뷔 시즌 갖다. 데뷔전 4번 타자는 가문의 영광이자 잊지 못할 추억 아닌가 싶다.
-2009년 순간도 많이 기억날텐데.
▶은퇴식이 결정된 후 조범현 감독님께 가장 먼저 연락드렸다. 외국에 계신 관계로 통화를 했다. '고생했다. 귀국하면 식사 한 번 하자'고 격려하시더라.
-향후 진로는.
▶오늘까진 KIA 선수지만, 은퇴한다고 해도 타이거즈를 떠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어떤 일을 할진 모르겠지만, 마음 속에 항상 타이거즈를 담아두고 있다. 여러 방면으로 고민 중이다. 은퇴식을 마친 뒤 어떤 방향으로 갈 지 구단과 상의할 생각이다.
-지도자, 행정가 중 비중을 둔다면.
▶50대50 아닌가 싶다. 지도자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해설 쪽을 한다고 해도 타이거즈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은퇴식을 마치고 구단과 조율해 진로를 결정하고 싶다.
-프랜차이즈 스타로 은퇴하는데.
▶붉은 물결로 시작한 만큼 마지막 순간 머리도 붉은 색으로 했다(웃음). KIA 타이거즈가 처음과 끝이었다. 너무 감사했고 행복했다. 이젠 추억 속에 나지완이란 이름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아쉽지만, 타이거즈 안에 나지완이란 이름을 각인시켜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많은 홈런을 쳤는데.
▶첫 홈런 생각이 난다. 친구인 조정훈의 공을 쳐 홈런으로 만든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타이거즈 홈런 역사에 이름이 올랐던 수원에서의 홈런도 추억이 되지 않을까 싶다.
-눈물을 보일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절대 울지 않는다 자신하는데, 오늘 야구장에 걸린 현수막을 보니 울컥하더라. 장담은 못하겠더라. 좋은 행사라 생각하고 왔기에 눈물을 보이지 않고 싶은데 잘 모르겠다(웃음).
-팬들께 한마디.
▶KIA 타이거즈에 입단한 이후 나지완이란 선수를 너무너무 사랑해주셔서 감사하다. 팬들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과분한 사랑을 갚을 수 있는 기회가 있길 바란다. 나지완이란 선수가 야구를 행복하게 했구나 싶더라. 과분한 사랑을 품에 안고 떠나겠다. (…)잊지 못할 순간을 만들어주셔서 감사드린다.
-후배들에 한마디.
▶KIA 선수라면 팬들의 사랑과 성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같은 애증의 선수가 되면 많은 역경이 뒤따를 것이다(웃음). 많은 순간을 이겨내면 타이거즈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재능이 많은 후배들이 많다. 내 홈런 기록을 깨고, V12를 이룰 수 있는 선수가 하루빨리 나오길 바란다.
-오늘 출전할 수도 있는 상황이 올텐데.
▶그러니까요.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감독님께 말씀도 드렸다. 왠만하면 내보내주신다 했다. 배팅케이지에서 열심히 몸을 만들고 있겠다.
-나씨 중 가장 성공한 야구 선수 아닌가.
▶예전엔 나지완이라면 알아주셨는데 (나)성범이가 너무 치고 올라왔다(웃음).
-포스트 나지완을 지목한다면.
▶(황)대인이가 꼭 해줬으면 좋겠다. 나와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선수 아닌가 싶다. 좋은 기량과 선후배와의 관계도 좋은 선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지도자는.
▶기억에 남고 도움을 받은 분들이 너무 많다. 타격 코치 시절에 많은 도움을 주신 이순철 코치님이 가장 생각난다. 미처 연락을 못 드렸는데, 은퇴식을 마친 뒤 차례로 인사를 드릴 것이다.
-한국시리즈 끝내기 홈런을 쳤던 채병용과의 승부도 기억날텐데.
▶(채)병용이형이 시구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많이 들었다. 홈런 칠 자신 있는데(웃음). 형님 덕에 좋은 추억을 안고 떠나는 것 같다.
광주=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