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9위 두산의 시선. 내년 시즌을 향해 있다. 사상 초유의 7시즌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숨 가쁘게 달려온 영광의 과거를 뒤로 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남은 시즌, 승패나 순위는 큰 의미는 없다. 다만, 희망을 주는 경기를 선사해야 한다.
호세 페르난데스 대신 거포 유망주 김민혁에게 선발 출전 기회를 주면서 포텐을 끌어내고 있는 이유다.
21일 잠실 NC전. 아쉽게 1대5로 완패하며 연승을 이어가는 데 실패했지만 또 하나의 신선한 희망을 품게 한 경기였다.
주인공은 좌완 루키 이병헌(19). 두산 마운드의 미래인 그가 1군 무대 4번째 등판에서 데뷔 후 최고의 피칭으로 0의 행진을 이어갔다.
이병헌은 1-5로 뒤지던 7회초 2사 2루에서 두산의 4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초구 143㎞ 패스트볼로 좌타자 노진혁을 2루 땅볼 유도하고 추가실점 위기에서 벗어났다. 8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이병헌은 선두 대타 윤형준을 슬라이더로 잇달아 헛스윙을 유도한 뒤 또 한번 슬라이더로 땅볼을 유도했다. 1사 후 오른쪽 타석에 선 김주원도 슬라이더로 평범한 우익수 뜬공 처리했다. 2사 후 서호철에게 2B2S에서 3루 땅볼을 유도했지만 교체 투입된 3루수 권민석이 강한 타구에 바운드를 맞추지 못하며 좌전 안타가 됐다.
하지만 좌완 루키는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김응민을 143㎞ 빠른 공으로 헛스윙 삼진을 잡고 임무를 마쳤다. 1⅓이닝 1안타 1탈삼진 무실점. 1군 무대 데뷔 후 4경기 연속 무실점. 평균자책점 0.00의 행진도 이어갔다.
미래의 좌완 에이스. 토미존 수술 후라 조심 또 조심이다. 1군 무대라 무리하지 않도록 ⅓이닝씩 이닝을 늘려가고 있다.
1군 데뷔 후 4차례 등판 중 이날이 가장 깔끔했다. 가장 길게 던졌고 무엇보다 투구수 16개 중 스트라이크가 12개일 만큼 안정된 제구를 자랑했다. 패스트볼 최고 구속도 145㎞까지 끌어올렸다. 스트라이크 존에서 빠르고 예리하게 떨어지는 주무기 슬라이더는 충분한 경쟁력이 엿보였다. 이날 던진 8개의 슬라이더는 모두 스트라이크 콜을 받거나 타자의 배트를 이끌어냈다.
2년 전인 서울고 2학년 당시 151㎞를 뿌리며 두산의 시선을 사로잡은 좌완 파이어볼러. 고3이던 지난해 토미존 수술과 내측 측부 인대수술 등 두차례에 걸친 수술에도 두산은 기대감을 접지 않았다. '다른 선수로 선회할 수 있다'는 예상을 비웃듯 당장 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1차지명 카드를 이병헌에게 썼다.
그 때 그 선택은 옳았다.
고교 때 살짝 불안했던 제구가 프로와서 크게 안정된 모습.
스피드는 갈수록 빨라질 것이다. 고교 때 구속인 150㎞ 초반의 강속구를 회복하면 슬라이더와 경합해 많은 탈삼진을 잡아낼 공산이 크다. 쓰임새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벌써부터 하게 만드는 기대주.
동기들보다 살짝 늦게 시동을 건 슈퍼루키.
어색한 9등이란 순위 속에 크게 웃을 일 없는 팀에 함박웃음을 안기고 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