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아버지께서…제게 말 한마디 없이 보러오셨더라고요."
올해 첫 선발등판에서 승리를 따냈다. 경기 후 만난 서준원(22)의 눈시울은 이미 붉어져있었다.
서준원은 14일 광주 KIA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5이닝 1실점으로 쾌투, 시즌 2승째를 따냈다. 올해 첫 선발승이다.
고교 시절 넘버원 투수로 군림하며 프로에서의 앞날이 창창해보였던 그다. 하지만 KBO리그의 벽은 만만치 않았다. 데뷔 첫 2시즌 동안 64경기(선발 36)에 등판, 11승 17패 평균자책점 5.32를 기록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한 만큼 기회는 줄어들었다. 지난해 서준원의 선발 등판 기회는 8번에 불과했다. 올해는 이날 전까지 단 1번도 주어지지 않았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던 드높은 자존감도 줄어든 기회만큼이나 사그라들었다. 어느덧 팬들의 머릿속엔 불어난 몸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직구와 슬라이더 투피치에 의존하는 서준원의 모습만이 남는듯 했다.
올해는 달랐다. 지난해 11월 아들 해온이를 얻으며 마음가짐을 새롭게 했다. 110㎏에 달하던 체중도 97㎏까지 줄였다.
주어진 역할은 선발이 일찍 무너진 경기에서 이닝을 책임지는 롱맨. 글렌 스파크맨의 '어린이날 참사' 당시 0이닝 6실점으로 물러난 그를 대신해 5이닝 동안 마운드를 지킨 주인공이 바로 서준원이었다. 5월 14일에는 1⅔이닝 만에 교체된 김진욱을 대신해 4⅓이닝을 책임졌다.
때를 기다려야했다. 외국인 투수 2명과 박세웅, 이인복까지 선발 4자리가 워낙 확고했다. 남은 한 자리 역시 서준원보다는 김진욱과 나균안에게 먼저 기회가 돌아갔다.
지난 11일 경기가 끝난 뒤, 2군에서 대기하던 서준원에게 임경완 투수코치가 전화를 걸어왔다. 일요일 선발로 준비하라는 통보. 허리 부상으로 빠진 이인복을 대신해 KIA를 상대로 나서게 됐다.
나이는 어리지만, 엄연히 처자식을 둔 가장이다. 가족 이야기가 나오자 분위기가 한층 차분해졌다.
"어머니랑 장인장모께서 전화로 격려를 해주셨어요. 그리고 오늘 아버지께서 제겐 말 한마디 없이 보러오셨더라고요. 경기 시작전에 (관중석에 있는)아버지를 제가 발견했는데…아버지 앞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 기쁩니다."
이날 서준원과 배터리 호흡을 맞춘 강태율은 "오늘은 제구면 제구 구위면 구위 완벽했어요. 원하는 곳에 정확히 공이 오는데,. 올해 최고의 컨디션이었던 것 같아요"라며 혀를 내둘렀다.
서준원 역시 좋은 결과를 내고 나니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하고자하는대로 잘 됐더요. (강)태율이형 믿고 타자에만 집중하다보니 힘이 붙었죠"라고 강조했다.
"19살, 20살 때 절 떠올렸어요. 넌 서준원이다, 스스로에게 다잡았죠. 아내도 자신감을 북돋아줬고요. 다이어트를 비롯해서 그동안 노력한 보람이 있네요. 팔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여러가지 변화를 주고, 가운데만 보고 자신있게, 내 템포대로 강약조절한게 잘 먹혔어요. 직구 슬라이더 외에 변화구도 다양하게 던졌어요. 파워로 밀어붙일 필요도 있지만, 타자들을 빠르게 잡아낼 수 있는 연구가 잘 됐던 것 같아요."
최형우에게 홈런을 허용했지만 실투가 아니었다. 몸쪽 낮은 코스에 꽉차게 제구가 잘된 공을 천하의 최형우가 정확히 퍼올린 것. 홈런을 맞은 뒤에도 상심하지 않은 이유다.
"직구는 이제 완전히 자신있어요. 슬라이더 커브도 자신감이 많이 붙었습니다. 체인지업, 투심, 소크라테스 삼진 잡을 때는 스플리터였고요. 그동안 2군에서 연습한 스플리터를 딱 한번 던졌는데 연습한대로 잘 들어갔네요."
서준원에게도 이대호의 은퇴 시즌은 소중하다. 마지막까지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마치고 싶습니다. 남은 시즌 어느 보직이든 좋으니, 팀이 원하는 방향대로 최선을 다할 거예요. 가을야구 정말 가고 싶습니다"라는 간절함을 숨기지 않았다.
광주=김영록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