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 용 기자] 허삼영 감독은 그저 실패한 감독일까.
삼성 라이온즈는 1일 허삼영 감독의 자진사퇴 소식을 알렸다. 자진사퇴든, 경질이든 허 감독이 지휘봉을 놓을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였다. 치욕의 13연패를 당하며 성적은 최하위권으로 떨어졌고, 연패를 끊어내고 반등 분위기를 만들었다면 모를까 경기력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허 감독의 자진사퇴 소식은 크게 놀랄 일이 아닐 수 있었다.
허 감독의 지난 3년을 돌이켜보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선임부터 그랬다. 선수 출신이기는 하지만, 유명 스타 플레이어 출신이 아니었다. 여기에 지도자로 일한 것도 아니었고, 전력분석팀장 등 프런트 역할을 쭉 해왔다. 그랬던 인물이 갑작스럽게 감독이 되자, 삼성의 선택에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팀을 6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다. 사실 정규리그 우승도 가능했다. KT 위즈와의 마지막 1위 결정전 승부가 너무나 아쉬웠다. 우승 전력이 아니었지만, 선수들이 똘똘 뭉쳤고 허 감독도 적시적소에 선수 기용을 하며 한 시즌을 잘 끌고 나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야심차게 시작한 올시즌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선수들의 줄부상에 부진까지 겹치며 꼬일대로 꼬인 시즌이 되고 말았다.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스타 출신 감독이 아니니 여론도 차가웠다. 필요 이상의 비난이 날아들기도 했다. 결국 그 부담이 13연패라는 충격의 결과로 연결되고 말았다. 결말은 자진사퇴였다.
일단 3년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으니, 실패라고 평가하는 게 맞을 듯 하다. 특히 올시즌 허 감독의 판단은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오승환, 백정현, 김헌곤 등 부진한 선수들을 지나치게 고집한 결과가 긴 연패로 이어졌다. 특히, 오승환이 31일 경기에서 충격의 블론 세이브를 다시 저지른 게 허 감독에게는 결정타였을 것이다. 냉철할 때는 냉철한 자세가 감독으로서 필요했다.
인터뷰, 기자회견 등에서도 딱딱한 자세로, 늘 단답형의 대답을 해 소통이 쉽지 않았다. 선수, 경기에 대한 평가도 늘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식이었다. 백정현이 11연패를 하는 동안 늘 허 감독은 "로케이션이 좋아지면"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대언론 뿐 아니라 선수단 운영에 있어서도 소통의 측면이 조금 부족했다는 게 냉정한 내부 평가다. 프런트 출신이기에 딱딱한 야구 선후배 문화를 탈피할 걸로 기대했는데, 이 부분이 100% 충족되지는 않은 듯 하다.
그렇다고 허 감독이 실패한 감독으로 낙인찍힐 이유도 없다. 삼성은 류중일 감독 '왕조 시절'이 끝난 후, 급격한 내리막 길을 타고 있는 팀이었다. 가을야구 문턱에도 못가던 팀을 지난 시즌 정규리그 우승 경쟁까지 시켰다. 또, 기존 지도자들 스타일에서 볼 수 없는 과감한 선수 기용과 작전 등도 돋보였다. 김지찬, 이재현, 김현준, 이해승, 황동재 등 젊은 선수들을 뚝심있게 키워냈다. 현재 삼성 불펜은 김윤수, 이승현, 문용익 등으로 채워졌느네 불과 몇 시즌 전까지 누군지도 모르는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지금 이 선수들이 100% 만족스러울 수는 없겠지만, 삼성 미래를 밝힐 수 있는 선수들로 성장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어떤 감독이든 좋은 성적을 내 재계약 하기를 원한다. 올해가 계약 마지막 해라면, 검증된 선수들만 주야장천 투입해 성적 낼 계산을 하는 게 보통 감독들이 보여주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허 감독은 그런 모습이 없었다. 물론,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이적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새 선수를 써야하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나름의 철학을 갖고 팀을 운용하는 방식은 기존 지도자들과 분명 다른 모습이었다.
대게 감독들은 큰 그림을 그린다. 계약 기간이 3년이면 앞에 2년 팀을 잘 만들어 마지막 시즌 성적을 내고 재계약을 하자는 식이다. 만약, 허 감독이 올해 작년과 같은 성적을 냈다면 무조건 재계약을 선물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기대치를 너무 키워놓은 게, 올해 오히려 독이 되고 말았다. 엄청난 성과를 내고도, 올해 부진으로 그 업적이 한 순간 잊혀진다는 게 불운해 보인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