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1년 만의 추락, 과연 문제는 뭘까.
도쿄올림픽 4강 기적을 일궜던 한국 여자 배구는 최근 막을 내린 VNL(발리볼 네이션스리그)에서 처참한 실패를 맛봤다. 16전 전패를 당했고, 세트득실 3-36 등 내용과 결과 모두 최악이었다. 도쿄올림픽을 마치고 대표팀을 떠난 김연경(34·흥국생명) 양효진(33·현대건설) 김수지(35·IBK기업은행)의 빈자리는 어느 정도 예상됐던 부분. 하지만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경기력과 팀 완성도는 한국 여자 배구에 '위기'라는 단어를 떠올리기 충분했다.
흥국생명 복귀 전 미국에서 두 달간 개인 훈련을 했던 김연경은 VNL 대부분의 경기를 지켜보면서 두 가지 화두를 던졌다. 스피드 배구 강화와 해외 진출이다.
김연경은 "세계 배구의 흐름이 스피드를 추구한다. 브라질이나 미국 등 많은 나라들이 스피디한 배구를 하고 있다. 최근 경기를 보면 '정말 빠르다'고 느낄 정도"라며 대표팀의 세계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스피드 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리시브-공격이 로테이션 관계 없이 이뤄지는 스피드 배구는 오래 전부터 강조돼 왔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에게 대다수의 공격이 몰리는 V리그 현실 속에서 국내 선수들이 정작 대표팀에서 스피드 배구를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 그동안 대표팀에서 오랜 기간 손발을 맞췄던 베테랑들이 건재할 때는 조직력을 그나마 기대할 수 있었지만, 이들이 떠난 뒤 세대 교체 과정에 접어들면서 결국 원점에서의 시작으로 회귀하는 모양새다.
김연경은 "세자르 감독님이 잘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스피드 배구가 하루 이틀 안에 되는 게 아니고, 잘 맞아 떨어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여전히 (대표팀에) 30대 베테랑 선수들이 많기에 세대 교체라 하기 애매한 상황이다. 그 선수들이 팀을 잘 이끌고, 어린 선수들이 잘 해준다면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리빌딩이 필요한 대표팀이지만, 그 완성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선진배구를 경험한 선수들이 대표팀에 많아진다면 그 시간은 단축될 수도 있다. 김연경은 최근 주축 대부분이 해외무대에서 뛰면서 전력이 급상승한 태국의 예를 들면서 '해외진출 활성화'를 강조하는 이유다. 하지만 한창 기량이 발전하는 20대 초중반에는 FA자격 취득 연한이 채워지지 않고, FA가 된다고 해도 이미 고액연봉자가 돼 해외 진출에 걸림돌이 생긴다는 점이 문제다. 대표팀을 위해 V리그에 무작정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이에 대해 김연경은 "당장 제도를 바꾸기 보다, 어린 선수 육성을 위해 구단에서 배려를 해주고, 나처럼 그 선수가 다시 국내 복귀 시 친정팀으로 온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좋은 토양에서 훌륭한 대표팀이 나온다는 점에서 V리그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대표팀은 세계 무대에 배구 수준과 리그의 얼굴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보면 결국 V리그와 대표팀은 운명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월드스타'의 조언은 그래서 되새겨 볼 만하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