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 전 뼈가 부러진 걸 알았지만, 데플림픽엔 꼭 나가고 싶었어요."
'스무살 탁구신성' 오세욱(20·수원시장애인체육회)은 지난 5월 카시아스두술데플림픽(농아인올림픽) 탁구 남자복식에서 '베테랑 에이스' 이창준(42·서울시청)과 함께 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도양양한 스무살 탁구청춘의 금메달 스토리가 궁금했다. 말없이도 아들의 마음을 술술 읽어내는 오세욱의 어머니 조춘옥씨(42)가 통역을 자청했다.
알고보니 투혼의 금메달이었다. 금의환향한 오세욱의 오른손엔 수술 자국이 선명했다. 출국 열흘 전 손등뼈 골절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5년을 기다려온 데플림픽 무대를 결코 포기할 순 없었다. 2019년 홍콩아태농아인대회가 쿠데타로 취소되고, 삼순세계농아인탁구선수권 때도 이스탄불공항에서 발길을 되돌린 경험이 있었다. 세 번째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가야만 했다. 2019년 홍콩 대회 직전 '메달을 꼭 따오라'던 할아버지는 손자의 메달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오세욱에겐 데플림픽도, 첫 메달도 절실했다. 드라이브를 걸 때마다 엄습하는 통증을 꾹 참고 부모의 만류를 뒤로 한 채 기어이 브라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매경기 죽을 힘을 다해 뛰었고, 마침내 선물처럼 기적같은 금메달이 찾아왔다.
'22세 위 금메달 파트너' 이창준은 오세욱의 에바다학교 시절 트레이너이자 첫 탁구 선생님이다. "원래 '쌤'인데 경기 땐 형이라고, 편하게 하라고 하셨어요. 처음엔 부담도 됐는데 하다 보니 괜찮아졌어요." 그냥 '괜찮은' 정도가 아니었다. '에이스' 이창준이 철벽처럼 버티는 가운데 승부처마다 오세욱의 '패기만만' 투혼의 드라이브가 작렬했다. 이들은 결승에서 우크라이나 그레고리 쿠즈멘코-안톤 벨리에프조를 4대0(11-5, 11-4, 11-4, 11-7)으로 완파하고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대한민국 청각장애 탁구가 데플림픽 첫 금메달과 함께 브라질 하늘에 애국가를 울렸다. "동메달이 목표였는데 금메달 따서 엄청 기분 좋았죠"라며 싱긋 웃는다. "시상대에 오르는 순간 엄마, 아빠, 돌아가신 할아버지, 중고등학교 때 비장애인 탁구부에 받아주신 선생님들, 메달 따오라던 친구들… 다 생각났어요. '창준쌤'도 숙소에서 제 손빨래까지 다 해주셨어요"라며 각별한 고마움을 전했다.
3년 후 일본서 열릴 데플림픽 2연패 계획을 묻자 오세욱은 "도전은 할 수 있지만…"이라고 얼버무렸다. 금메달 인터뷰 때의 환한 미소가 사라졌다. 42세 파트너, '창준쌤'이 은퇴하면 또래 선수들과 금메달을 위해 배전의 노력을 해야 하는데 돌아온 장애인탁구 현실은 여전히 열악하기만 하다. 오세욱은 수원시장애인체육회 소속이긴 하지만 수원시엔 장애인탁구팀도 남자탁구 실업팀도 없다. 당연히 훈련장도, 파트너도 없다. 수원시청 여자탁구팀과 함께 훈련하거나, 화홍고, 경기대 등 비장애인 탁구팀의 도움을 받을 때도 있지만 체계적인 훈련은 불가능한 상황.
'비장애인 탁구 명문' 수원 곡선중-화홍고 출신인 오세욱은 실력 향상을 위해 반드시 '장애인,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팀에서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하다는 걸 안다. 탁구는 예민한 종목이다. 수원 곡선중 진학 때도 어머니는 비장애인 에이스 틈바구니에서 아들이 힘들까봐 만류했지만 아들은 "공만 줍더라도 가겠다"며 진학을 고집했었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오세욱은 "부상을 잘 이겨낸 후 비장애인, 장애인 구분 없이 엘리트 선수들이 함께 훈련하는 환경에서 뛰고 싶다. 박재형 대표팀 감독님(서울시장애인체육회 탁구감독)과도 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2연패 가능성을 재차 묻자 느릿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꿈은 이뤄진다"고 답했다.
스무 살 오세욱이 간직한 또 하나의 원대한 꿈은 "체육관 건립"이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훈련장이 없어 힘든 때가 많았어요. 비장애인 선수와 장애인 선수들이 함께 훈련할 수 있는 체육관, 무엇보다 갈 곳 없는 농아인 후배들이 마음껏 탁구를 칠 수 있는 체육관을 만들고 싶어요"라고 했다. 금메달 이후 자신보다 농아인 후배들을 위해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꿈이 점점 많아진다는 '기특한' 스무살 청춘이다.
어머니에게 오세욱은 어떤 아들인지 물었다. "보석같은 아들이죠. 닦을수록 더 빛나는 아들. 우리 아들이 박재형 감독님처럼 대표팀도 이끌고, 장애인선수들에게 더 많이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