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나유리 기자]장타툴까지 갖춘 '사기 캐릭터'. 이대로라면 KBO리그 역대 최초 부자(父子) MVP도 당연히 가능하다.
키움 히어로즈 이정후가 요즘 홈런에 눈을 떴다. 그는 지난 26일 열린 부산 롯데 자이언츠전에 이어 28일 고척 KIA 타이거즈전에서 2경기 연속 홈런을 쏘아올렸다. 그가 8월에 친 홈런만 8개. 그것도 모두 결정적 상황에서 터뜨린 영양가 높은 홈런이었다.
시즌 14개의 홈런으로 홈런 부문 공동 2위(LG 김현수 14개)로 뛰어오른 이정후는 현재 KBO리그 타격 지표 대부분을 휩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8일 기준으로 이정후는 타율 2위(0.351), 홈런 2위, 타점 3위(58타점), 최다 안타 공동 1위(98안타), 출루율 1위(0.426)로 도루를 제외한 거의 전 부문에서 최상위권에 올라있다.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장타다. 이정후의 장타율은 0.581로 리그 전체 1위다. '홈런왕' 박병호(KT)의 0.560(2위)을 넘는 성적이다. 올 시즌 가장 높은 확률로 장타를 생산해내는 타자도 이정후인 것이다.
데뷔 시즌이었던 2017년부터 리그 톱클래스 타자로 성장해온 이정후지만, 장타 생산형 타자보다는 높은 출루율을 바탕으로 한 중거리형 타자로 꼽혀왔었다. 그랬던 그가 올 시즌에는 작심하고 장타까지 많이 생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정후는 "지금 잠시 뿐이다. 내가 원래 홈런 욕심을 내는 타자가 아니다. 내가 잘하는 것은 따로 있다"고 하지만, 성적이 증명해준다.
지금의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이견 없이 정규 시즌 MVP도 노려볼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아버지 이종범 현 LG 트윈스 2군 감독과 더불어 역대 최초의 부자 MVP도 노려볼 수 있다.
KBO리그 역사상 최고의 유격수 겸 리드오프로 꼽히는 아버지의 전설 속 성적도 아들 이정후가 노리고 있다. 이종범의 현역 시절 최고의 시즌은 해태 타이거즈에서 뛰던 1994년과 1997년이다. 1994년 이종범은 196안타 타율 0.393이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남겼고 그해 정규 시즌 MVP를 수상했다. 1997년에는 커리어 사상 가장 많은 장타를 생산했던 시즌이다. 그는 그해 30홈런을 터뜨리며 리그 홈런 2위를 차지했다. 1997년에는 정규 시즌 MVP가 홈런 1위였던 이승엽에게 돌아갔고, 이종범은 한국시리즈 MVP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그해 정규 시즌 그의 장타율은 무려 0.581에 달했다. 이종범의 커리어에 있어 장타를 치는 감이 절정에 올랐던 시즌이다. 그리고 이듬해 이종범은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한다.
아들 이정후가 바로 그 1997년 아버지의 성적을 닮아가고 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리그 환경이나 상대하는 투수들의 수준, 경쟁하는 타자들의 기량 차이 등 많은 요소가 다르기 때문이 순수한 객관적 비교는 힘들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시즌 이정후는 아버지의 최전성기에 견줄만 한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