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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투수 신경 안쓴다" 절친 형과의 비정한 수 싸움, 속고 속이는 냉혹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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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KBO리그는 좁다. 학교 선후배 사이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가깝고 먼 차이일 뿐 프로에 입단하면 소개로 두루 알게 된다. 팀을 좀 옮겨 다니다 보면 인맥은 점점 더 넓어진다.

타 팀에도 절친 선후배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야구가 잘 안될 때는 조언도 하고, 격려도 한다. 배트 등 용품을 건네며 기를 불어넣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응원과 격려는 조건부다. '우리 팀이 아닌 다른 팀과 게임할 때'에 한한다.

맞대결이라도 하게 되면 미묘해진다. 친한 사이끼리는 더 악착같이 달려든다. 번번이 당하면 사석의 농담 속에 놀림감이 되기 십상이다.

절친인 포수와 타자. 이 관계는 어떨까.

두산 강승호와 LG 유강남이 대표적이다. 강승호의 LG 시절 한솥밥을 먹으며 친해진 선후배 사이.

11일 잠실라이벌 LG-두산전. 동생 강승호가 절친 형 유강남을 울렸다.

2-4로 뒤지던 7회초. 정수빈이 번트안타로 출루했다. 진해수의 2구째를 유강남이 포일을 범해 무사 2루. 1B2S.

치열한 수싸움이 시작됐다. 직전 타석에서 체인지업에 삼진을 당했던 터. 유강남의 선택은 144㎞ 몸쪽 패스트볼이었다. 하지만 살짝 가운데로 몰린 공을 놓치지 않았다. 가볍게 밀어 우전안타로 연결했다. 3-4 한점 차 추격하는 적시타.

운명의 장난 처럼 1점 차로 뒤지던 8회 또 한번의 빅찬스가 강승호에게 걸렸다. 1사 2,3루.

2B0S의 타자 카운트에서 강승호는 이정용의 133㎞ 슬라이더를 거침 없이 당겨 역전 2타점 적시타를 뽑아냈다. 강승호가 밝힌 이 순간의 재구성.

"사실 제가 초구에 직구를 노렸었는데 변화구가 들어왔거든요. 이제 좀 차분하게 공을 보자는 생각으로 타석에 들어갔는데 2볼이 됐어요. 강남이 형은 항상 저한테 타자가 유리한 카운트에서 직구를 잘 안 주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도 무조건 변화가 던지겠구나 하고 노렸는데 노림수가 잘 맞은 것 같습니다."

이 전까지 강승호는 이정용을 상대로 6타수무안타였다. 그래도 투수는 신경쓰지 않았다. 포커스는 오로지 '강남이 형'이었다. "LG랑 할 때는 투수 볼이 이렇고 저렇고 보다 강남이 형이 뭘 던지게 할까 생각을 많이 하게되는 것 같아요."

서로를 너무나 잘 아는 사이. 나를 가장 잘 아는 자가 승부에서는 가장 어려운 상대일 수 밖에 없다. 때론 허를 찌르는 역발상도 필요하다.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가위바위보 게임이다.

"LG에서 제일 친하게 지냈던 선배고, 항상 밖에서도 많이 보는 친한 사이기 때문에 저를 많이 잘 알고 있습니다."

가장 친한 사이끼리 속이고, 속으며 희비가 엇갈릴 수 밖에 없는 게 야구란 스포츠의 본질. 그런 비정함이 각본 없는 드라마를 만든다. 이날도 그랬다.

친한 동생에게 철저히 당한 하루. 과연 유강남은 다음 만남 때 어떤 수싸움으로 빚을 갚을까. 흥미로운 잠실 라이벌전 속에 감춰진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