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투수는 제5의 내야수다. 일단 투구를 마치고 나면 수비수로 변신해야 한다. 땅볼이든 뜬공이든 본인이 책임져야 할 타구가 한 경기에 3~4번은 된다. 여기에 1루 또는 홈 커버 상황도 발생한다.
SSG 랜더스 김광현은 훌륭한 투수지만, 수비수로서는 상급 평가를 받지는 못한다. 아무래도 투구폼이 크고 다이내믹하다 보니 투구를 마친 뒤 여유가 없다. 타구 대응 자세가 유연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기록으로 드러난다. 김광현은 KBO리그 통산 수비율이 0.949다. 자살 81회와 보살 275회에 실책 19개를 범했다. 같은 왼손인 KIA 타이거즈 양현종의 수비율 0.951(자살 65회, 보살 286회, 18실책)과 비슷하지만, 한화 이글스 시절의 류현진(0.979)보다는 떨어진다. 올해 4시즌째 뛰고 있는 외국인 투수 키움 히어로즈 요키시(0.930)와 NC 다이노스 드류 루친스(0.932)보다는 높다.
김광현이 데뷔한 2007년 이후 전체 KBO리그 투수들의 수비율은 0.950이다. 김광현의 경우 중급 수비 실력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올해는 벌써 2개의 실책을 기록했다. 둘 다 번트 수비에서 나왔다.
지난 7일 창원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 선발등판한 김광현은 1-0으로 앞선 2회말 5점을 허용하는 과정에서 번트 수비를 하다 실책을 범했다. 마티니와 윤형준에게 연속안타를 허용해 무사 1,3루. 이어 김준원을 땅볼로 유도했으나, 2루수 최주환이 뒤로 빠트려 동점이 됐다. 상황은 무사 1,2루. 다음 타자 서호철이 번트를 댔다. 김광현이 앞으로 달려가 공을 잡은 뒤 지체없이 3루로 던졌는데, 3루수 석정우의 왼쪽으로 한참 벗어났다. 송구 실책. 윤형준이 홈을 밟아 1-2로 전세가 뒤집어졌다. 박민우에게 2루타를 맞고 추가 2실점했고, 이어 박민우의 3루 도루를 저지하던 포수 이재원의 송구 실책이 나와 1-5로 점수차가 벌어졌다. 한 이닝에 실책이 무려 3개가 나와 5실점 중 김광현의 자책점은 1개 뿐이었다.
하지만 김광현의 실책이 가장 뼈아팠다. 왜 그런 실책이 나왔을까. 번트 수비서 늘 그렇듯 다급한 마음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서호철의 번트를 잡은 김광현이 3루를 겨냥한 건 옳았다. 2루주자를 3루에서 포스아웃시킬 수 있는 타이밍이었고,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급하게 강하게 던져 제구가 안됐다. 그라운드에 주저앉은 김광현은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앞서 지난달 26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는 5회초 한태양의 번트를 잡으려다 한 번 놓쳤고, 다시 잡아 1루로 던졌으나 아웃 판정이 비디오 판독에서 세이프로 번복됐다. 심리적으로 다급했던 것이다.
한편으로 보면 승부욕, 책임감이다. 김광현도 승부욕이 강하다. 자책하는 모습을 자주 노출하는 이유가 승부욕 때문이다. 스프링캠프에서 또는 시즌 중 투수들은 번트 수비 연습을 수 없이도 한다. 그만큼 투수의 번트 수비는 대단히 중요하다. 다른 야수와 마찬가지로 투수의 수비도 집중력과 침착함이 좌우한다. 여기에 승부욕이 더해지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날 김광현은 7이닝 5안타 5실점해 시즌 첫 패를 안았다. 실책이 섞여 평균자책점은 1.39로 좋아졌지만, 자신의 실책이 나오지 않았다면 이겼을 지도 모르는 경기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