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마무리를 하고 싶다."
평생 치열하게 야구와 싸워온 김경문 전 야구대표팀 감독(64)은 요즘 하루하루가 새롭다. 미국 애리조나주 글렌데일 LA 다저스 연장 스프링캠프(Extended spring camp)에서, 매일 새로운 야구를 접하고 배우며 즐겁게 고민하고 있다. 다저스 마이너리그 초청강사(Guest instructor) 자격으로 합류한 지 두 달째다.
선수 은퇴 직후인 1990년대 초반, 미국 야구연수를 했으니, 30년 만에 미국야구를 다시 보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기술적인 영역이 아니라, 선수 육성 방식, 시스템을 비롯해 구단이 어떻게 장기적인 계획하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지 공부하고 있다. 가슴에 불을 품고 승부사로 살아온 야구인생에서 간과했던 부분이다.
지난 해 말 국가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난 뒤, 몇 달간 쉬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고 했다. 참 오랜 시간 앞만보면 달려왔다.
김 감독은 "그동안 고마운 사람, 즐거웠던 일, 잘 한 일과 후회되는 일, 미안한 사람들을 생각했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보완하고 바꿔야하고, 배워야 하는지 깊이 고민했다"고 했다.
두산 베어스와 NC 다이노스, 국가대표팀 사령탑 역임한 대한민국 최고 지도자가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부족하고 아쉬웠던 점을 채우고,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란다.
지난 해 도쿄올림픽에서 야구대표팀이 부진한 성적을 내면서 온갖 질타가 쏟아졌다. 마음고생이 심했던 김 감독은 "다 감독인 내 책임이다. 속상하고 힘들었지만 대표팀 감독이라면 감수해야할 일이다"고 했다.
사실 김 감독만큼 오랫동안 메이저리그에 관심을 두고 공부한 지도자가 없다. 메이저리그 경기 중계를 매일 보며 분석하고, 우리 야구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프로야구 사령탑 시절, 경기 전 더그아웃에서 김 감독을 만나면, 거의 빠짐없이 당일 메이저리그 경기를 화제에 올렸다. 주요 선수의 장단점 등 면면을 꿰고 있었다.
미국야구가 변하고 있다는 걸 김 감독이 모를 리 없다. 미국야구의 변화는 시차를 두고 한국야구에 영향을 미친다. 변화를 현장에서,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김 감독은 "지난 2월 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플로리다 말린스 메이저리그 구장,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토론토 블루제이스 스프링캠프 훈련장에서 현장 직원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메이저리그 구단이 한 시즌을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지, 장기계획을 세워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 수 있었다"고 했다.
더 깊이, 더 많이 알고 싶었다.
지도자의 길에 들어선 후 지난 30년간 오로지 야구만 바라보며, 불꽃처럼 살았다. 코치, 감독으로 오로지 이기는 데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이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코치 연수를 알아 봤다. 두개 팀에서 초청장을 받았는데, 팀 운영과 팜 시스템이 최고인 LA 다저스를 선택했다"고 했다.
연장 스프링캠프가 끝나면 6월 초부터 애리조나 컴플렉스 리그(Arizona complex league)가 3개월간 이어진다. LA 다저스 연장 스프링캠프에는 메이저리그, 마이너리그의 재활 혹은 휴식이 필요한 선수와 루키 유망주들까지 다양한 선수들이 모여있다. 매일 훈련을 하고 재활 프로그램을 소화하면서 내일을 준비한다. 메이저리그가 최전방이라면, 연장 스프링캠프는 후방 지원지인 셈이다.
김 감독은 "매일 현장에서 훈련을 돕고 현장 코치, 코디네이터, 각 부서 책임자들과 미팅을 한다. 그들이 중점적으로 생각하고 실행하고 있는 부분을 배우고 있다"며 "또 매일 선수들의 훈련과 연습경기를 보면서 선수가 어떻게 성장하고 발전하는지 관찰하고 있다"고 했다.
프로야구 감독, 올림픽 우승을 이끈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수많은 경험을 한 그가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우고 있다고 했다.
김 감독은 "그동안 너무 좁은 시야로 야구를 바라봤다. 이기는 것에만 집중하다보니 큰 부분을 간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고 했다.
피말리는 승부의 세계에서 비켜서서 야구를 보니, 다른 게 눈에 들어왔다. 야구장 환경과 팀 전체의 소통과 방향성, 기초 데이터 활용법, 효율적인 팀 관리, 장기적인 육성과정 등이다.
김 감독은 목표가 확실하다. "다저스 구단이 지난 몇 년간 어떤 이유로 새로운 틀을 짰고 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지, 또 어떤 디테일을 가지고 어떻게 활용하는지 보고싶다"고 했다.
그의 배움에 대한 열정과 경험이 어떤 식으로든 한국야구 발전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