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삼성-한화전이 열린 13일 대구 라이온즈파크.
경기 전부터 강한 바람이 구장을 감쌌다. 주로 왼쪽으로 강하게 분 바람은 이날 경기의 최대 변수였다.
실제 삼성은 좌익수에 발 빠른 대졸 루키 김재혁을 배치하며 바람 변수에 대비했다. 바람은 수시로 바뀌면서 투수와 야수들을 힘들게 했다.
바람 여파는 생각보다 셌다.
2회초 한화 장운호의 좌중월 119m짜리 선제 솔로홈런은 왼쪽으로 강하게 분 바람을 타고 훌쩍 넘어갔다. 반면 2회말 오재일의 우측 홈런성 타구는 바람에 막혀 펜스 앞에서 뚝 떨어졌다.
야수들은 오른쪽으로 높이 치솟은 뜬공이 바람에 막히면서 타구 처리에 애를 먹는 모습.
4회 김헌곤의 파울 플라이는 앞 바람에 막혀 급격히 앞쪽으로 떨어졌다. 1루수 노시환이 급히 달려왔지만 포구에 실패했다. 죽다 살아난 김헌곤이 희생플라이로 4-1을 만들었다. 5회 한화 정운호의 평범한 뜬공도 우익수 구자욱이 생각한 낙구지점보다 훨씬 앞에 떨어지자 부랴부랴 달려와 가까스로 잡고 안도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왼쪽으로 강하게 부는 바람의 영향을 예의주시한 사람이 있었다.
삼성 3루쪽 박스를 지키고 있던 '걸사마' 김재걸 코치였다. 1-1로 맞선 4회말 무사 2루. 강민호가 한화 선발 김민우의 4구째 커브를 밀었다. 배트 끝에 맞은 짧은 타구가 우익수 앞 쪽을 향했다. 바람에 막힌 타구는 뻗어가지 못하고 낙하하기 시작했다.
2루주자 피렐라는 아직 3루에 도착하지 못했다. 우익수는 강견을 자랑하는 임종찬. 당연히 3루 코치가 멈춰세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김재걸 코치는 순간 빠르게 손을 돌렸다. 계속 뛰라는 수신호. 피렐라가 기다렸다는 듯 성난 들소처럼 홈을 향한 폭주를 시작했다. 우익수 임종찬이 강하게 홈으로 원바운드 송구를 했지만 오른쪽으로 살짝 비켜가면서 피렐라가 먼저 홈을 쓸고 지나갔다.
바람에 막히지 않았다면 임종찬은 자연스럽게 앞쪽으로 스텝을 밟으며 포구와 송구 동작을 원스텝으로 매끄럽게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바람에 막힌 타구가 예상보다 앞에 떨어지면서 포구와 송구는 한 스텝 늦어질 수 밖에 없었다. 강한 어깨에도 불구, 송구 정확도와 접전 타이밍이 늦어졌던 이유.
바람까지 계산한 김재걸 코치의 치밀하고도 기습적인 '고(G0)' 사인이 만들어낸 역전 득점. 삼성이 12대1로 승리하며 이 점수는 고스란히 결승득점이 됐다. 강견의 외야수도 막을 수 없었던 기지가 빛났던 순간이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