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막혀있을 때 흐름을 바꿔주는 능력이 있다. 포지션도 2루가 가장 편한 선수다."
커리어는 비교하기 어렵다. 나이 어린 유망주도 아니다. 베테랑 주전과 동갑내기 백업 선수. 하지만 류지현 감독의 눈은 정확했다.
이상호는 13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SSG 랜더스전에 2번타자 2루수로 선발출전했다. 지난 9경기 내내 주전 2루수로 나섰던 서건창을 대체한 선택이다.
서건창은 지난해 정찬헌과 맞트레이드, LG 유니폼을 입었다. LG의 약점인 2루를 보강하기 위한 트레이드였다.
하지만 현재까진 실망스럽다. 지난해 LG에서의 성적은 타율 2할4푼7리 2홈런 24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655. 오히려 키움 시절(타율 2할6푼 OPS 0.725)보다 하락했다. 201안타로 KBO 단일 시즌 최다 안타 기록을 새로 쓰고, 교타자임에도 0.1에 육박하는(0.985) OPS를 기록하던 2014년의 그가 아니다. 기존 2루수였던 정주현(타율 2할3푼8리, OPS 0.664)보다 낫다고 보기 어려웠다.
결국 서건창은 그토록 원했던 FA 권리를 1년 더 미뤘다. 하지만 재기를 꿈꾸며 준비한 올해는 더 가라앉고 있다. 12일까지 타율 1할3푼3리, OPS 0.373의 극심한 부진. 류지현 감독은 서건창 대신 이상호를 기용한 이유에 대해 "서건창이 올해 절치부심하고 열심히 준비했다. 개막전에도 좋은 결과(2타점 3루타) 내지 않았나"라면서도 "잘 맞은 타구가 자꾸 직선타로 잡히더라. 타자는 결과가 안 나오면 자기 리듬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고 답했다.
반면 이상호의 경우 데이터적으로 SSG 선발 오원석을 상대로 지난해 3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시범경기 때도 5할6푼3리(16타수 9안타)의 맹타를 과시했었다. 류 감독은 "이상호가 시즌 후반부에 알짜배기 역할을 잘해줬다. 오늘도 흐름을 바꿔주길 기대한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류 감독은 현역 시절 최고의 유격수였다. 그는 "송구에 약점이 있으면 거리가 먼 3루에, 다리 움직임이 부족하면 유격수 수비 쪽에 아쉬움이 있는데 이상호는 송구 정확도도, 하체 움직임도 모두 준수해 내야 전포지션이 가능하다. 그래도 2루가 가장 편하다"고 덧붙였다.
류 감독의 선택은 옳았다. 이상호는 전반적인 타선의 부진 속에도 3타석 3출루를 기록하며 테이블 세터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1회말 첫 타석에선 볼넷을 골라내며 무사 1,2루를 만들었지만, 클린업 트리오의 범타로 득점 기회가 무산됐다. 3회말엔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중전 안타를 렸고, 5회말 2사 2,3루에선 또다시 볼넷을 얻어내며 간판타자 김현수에게 또한번 타점 기회를 넘겼다. 아쉽게도 득점과 이어지진 않았지만,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2번타자로선 최고의 활약이었다.
대량득점 위기를 막아낸 수비에서의 활약도 눈부셨다. LG 선발 손주영은 0-1로 뒤진 4회초 선두타자 크론에게 우중간 2루타, 다음 타자 김성현에게 볼넷을 허용하며 위기에 처했다. 다음 타자 박성한의 타구는 투수 옆을 스치는 중전안타성 타구. 하지만 이상호가 멋진 다이빙 캐치로 가로막은 뒤 2루에 토스, 1루 주자를 잡아냈다.
끝이 아니었다. 이재원의 3유간 적시타로 2점째를 내준 뒤 2사 1,2루 위기가 이어졌다. 추신수는 1,2루간을 가를듯한 매서운 땅볼 타구를 때렸지만, 이상호는 결사적으로 따라붙은 뒤 말그대로 온몸을 던졌다. 거짓말처럼 추신수의 타구는 이상호의 글러브에 빨려들었고, 이상호는 깔끔한 1루 송구까지 더하며 추가 실점을 막아냈다. 외인 내야수 루이즈도 이상호의 멋진 수비에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상호를 주목한 레전드 유격수의 눈썰미가 돋보인 하루였다.
이상호는 9회말 무사 1,2루에도 깔끔한 희생번트로 찬스를 이어갔다. 하지만 LG는 김현수-문보경이 잇따라 삼진으로 물러나며 반격에 실패, 아쉬움을 삼켰다.
잠실=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