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왕년의 '무적함대', 하지만 어느덧 배구 명가란 수식어마저 무색해졌다.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한지는 8시즌, 봄배구를 한지는 4시즌이 지났다.
삼성화재는 2시즌 동안 팀을 지휘한 고희진 감독과의 작별을 결정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고 감독의 목소리에선 시즌을 마친 피로와 더불어 아쉬움이 짙게 묻어났다. 그는 한 시즌을 돌아보며 "참 다사다난했다"고 한숨을 토했다.
"많이 아쉽다. 시즌 전부터 코로나19가 터지고, 최약체로 평가받고, 반전도 보여줬는데 또 코로나가 찾아오고 시즌이 중단됐다. 팀을 다시 추스리는게 쉽지 않았다."
고희진 감독은 '그시절' 삼성화재의 막내다. 2003년 데뷔 이래 원클럽맨으로 뛴 14년, 팀의 전성기부터 쇠퇴기까지 선수로서 보고 듣고 겪었다.
은퇴 직후 코치로 합류, 임도헌-신진식 전 감독과 함께 팀을 이끌었다. 그가 새 사령탑으로 부임할 때만 해도 '그 밥에 그 나물'이란 평가를 피할 수 없었다. 아직 수뇌부가 추억에 빠져있다는 비아냥도 뒤따랐다.
전성기 삼성화재는 안정된 서브와 끈질긴 수비에 초점을 맞춘 팀이었다. 거포 김세진조차 스파이크서브를 하지 않았다. 강서브는 삼성화재의 긴 전성기 동안 외국인 선수 외엔 신진식, 박철우 등 소수의 선택된 선수들에게만 주어진 권리였다.
하지만 고희진은 달랐다. 그가 내세운 가장 큰 가치는 '쇄신'이었다. 노쇠하고 낡은 팀의 이미지를 벗고, 선수들이 오고싶어하는 팀으로 바꾸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자기전 핸드폰 반납으로 대표되는 '삼성고등학교' 문화부터 싹 바꿔놓았다. 여기에 2년간 무려 6번의 트레이드를 통해 새로운 팀으로 거듭났다. 트레이드한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송희채 류윤식 김형진 등 팀의 핵심으로 활약하던 선수들이다. 잔류한 선수는 고준용과 정성규 정도.
신장호 황경민 안우재 등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꾸려진 삼성화재는 강서브 군단으로 다시 태어났다. '실패한 외인 재활용'으로 우려를 샀던 카일 러셀은 8연속 서브에이스라는 V리그 새 역사를 쓰며 득점 2위(915득점)를 차지했다.
팀 성적이 문제였다. 감독 첫 시즌이었던 지난 시즌, 2005년 V리그 출범 이래 첫 꼴찌(6승30패, 7위)의 굴욕을 당했다. 올시즌에는 8승을 더 올리며 14승22패(승점 44점)로 한계단 올라섰지만, 4위 한국전력(승점 56점)과 격차를 보이며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5위 OK금융그룹
뜻밖의 전염병이 문제였다. 시즌 전 선수단 전체가 코로나에 휩쓸렸고, 시즌 도중 또한번의 코로나 습격을 받았다. 만신창이가 된 선수들을 이끌며 분투했건만, 마지막 경기에서 최하위를 탈출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는데 그쳤다.
선수로 13시즌, 코치로 4시즌, 감독으로 2시즌. 햇수로 따지면 20년을 함께 한 곳을 떠나게 됐다. 고 감독은 "두 시즌 동안 같이 뛰고, 느끼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공감하는 한 팀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잘될 때는 잘 됐는데… 2년차 감독이다보니 나도 많이 부족했다"고 새삼 아쉬움을 토로하는 한편 "나보다는 선수들에게 고생많았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