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문지연 기자] 배우 윤박이 '지질남' 한기준으로 성장을 이뤄냈다.
JTBC 토일드라마 '기상청 사람들 : 사내연애 잔혹사 편'(선영 극본, 차영훈 고혜진 연출)은 열대야보다 뜨겁고 국지성 호우보다 종잡을 수 없는 기상청 사람들의 일과 사랑을 그린 직장 로맨스 드라마. 윤박은 극중 전무후무한 '지질남' 한기준을 연기해내며 초반의 빌런으로 확실히 활약했다. 10년간 사귀고 결혼을 약속했던 연인 진하경(박민영)을 배신한 것도 모자라 바람난 상대인 채유진(유라)과 초고속 결혼을 하고, 심지어는 자신의 지분이 거의 없는 신혼집 아파트를 반반 나노자고 말하는 뻔뻔함으로 분노 유발자에 등극하며 '하찮음'을 자랑하기도. 그러나 유진의 믿음직한 남편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지질하지만 귀엽다'는 호평을 받아내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윤박은 최근 스포츠조선과 온라인을 통해 만나 '기상청 사람들'로 보내왔던 시간들을 추억했다. 그는 "6개월 동안 열심히 찍었고, '방송 언제 하지, 방송 보려면 멀었다'고 했는데 어느덧 종영이라 느낌이 이상하다. 그렇게 촬영했던 순간들이 기억이 나면서 감사했던 순간들이었다. 시청자 분들께서도 많이 좋아해주셔서 오랜만에 행복했던 두 달을 보낸 것 같다"는 소감을 남겼다.
한기준은 쉽지 않은 역할이었다. 드라마의 빌런으로 자칫하면 비호감이 될 수 있는 배역이었지만, 윤박은 이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해석했고, 노력형 성장캐로 재탄생시켰다. 윤박은 "처음엔 캐릭터가 별로라서 거절을 하려고 갔었다. 감독님이 '거절해도 되니까 편하게 미팅해보자'고 말씀하셔서 거절하는 마음으로 갔었는데, 감독님이 '박이 네 본체가 가진 것들이 있기에 한기준과 네가 만나면, 남들이 봤을 때 나쁜 기준이가 상쇄될 것 같다'고 하셨다. 한기준이 나쁘지만, 너무 비호감으로 가면 보시는 분들이 싫을 수 있어서, 저에게도 하나의 도전이었고 그래서 하고 싶었던 거였다. 정말 감독님이 말씀하신대로 다가간다면, '나에게 이런 매력도 있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정말 이 캐릭터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시청자들이 봐주신다면, 제 스스로의 자신감도 얻을 수 있을 것 같고, 용기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기준이가 사랑받지 못하는 캐릭터가 됐다면 속상해했을 거고 엄청 후회를 했을 거다. 제 스스로의 도전거리를 던졌는데 그나마 조금 도전거리를 잘 완수한 것 같아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도전'이라고 할 정도로 어려운 연기의 연속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한기준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 심지어 원형탈모가 올 때까지 고민했다는 윤박은 "사실 대본을 보고서 이 사람의 행동과 사고방식이 이해가 안 가서 정말 힘들었는데, 주변에서 '이런 사람들 진짜 많다. 네가 못봐서 그런 것'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연기하려 노력했다"고 했다. 이어 윤박은 "기준에게 공감이 하나도 안 됐다. 1화부터 그랬다. 헤어졌으면 헤어진 거지, 그걸 또 (아파트를) 반반 나누자고 하고, 집 명의도 그렇고, 자기가 위자료 식으로 주기도 했는데 그것도 나누자고 하고, 그 부분들이 드라마 초반에 나와서 활력을 준 것 같고, '너 왜그러냐!'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 부분을 좋아해주신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또 유진이와 계속 싸우는 것. 신혼이라면 알콩달콩하고 예쁜 모습들일텐데 신혼인데도 매일 싸우고 걸고 넘어지니 제가 생각한 결혼관과 달랐다. '와이프한테 그러지 마라'를 항상 끝날 때까지 달고 살았다"고 했다.
윤박은 이어 "한기준의 '지질 포인트'가 여러군데 있지만, 미행하는 장면이 최고였다. 사실 그 전의 신들. 하경이네 집에 찾아가서 울고불고, 하경이에게 오해를 해서 얘기하고 그런 부분들이 지질했지만, 기준에겐 진심이었다. 웃길 수도 있지만, 기준이에겐 진심의 순간이라 지질하진 않은 것 같은데 미행은 구차하고 되게 별로였다. 기준이의 지질 점수는 10점 만점 중 7점이다. 방송이 끝나고 이들의 미래가 있을텐데, 거기서 3점을 채우지 않을까 싶다. 종영 후 한기준의 삶을 추적하면 만점을 채울 것 같다"며 "저와의 싱크로율은 한 50%다. 저는 착한사람 콤플렉스가 있어서 남에게 폐끼치면 안되고, 뭘 하면 안된다고 스스로를 통제한다. 그런데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은 기준이와 잘 맞다고 생각이 든다. 다만, 사람을 대하는 측면에서는 저와 정반대의 인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생 캐릭터'로 불리는 한기준을 완성하기까지는 다른 배우들과의 호흡이 힘이 됐다고. 윤박은 "인생 캐릭터라는 표현만큼 배우에게 감사한 표현은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드리고, 사실 기준이 캐릭터가 이렇게 초반에 파급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했는데 그건 감독님과 같이 해주신 배우들이 잘 만들어주셔서 가능했던 게 아닌가 싶다"며 "민영 누나와는 합이 너무 잘 맞았다. 리허설을 할 때 합이 너무 잘 맞아서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그때의 감정과 공기, 기온, 온도 같은 것들이 덜 느껴지더라. 그래서 항상 '우리는 연습하지 말고 부딪히자'고 했었다. 싸우는 장면에서도 '어떻게 저렇게 뻔뻔하지' 싶게 했다. 하경과 마주치는 장면에서 애드리브로 통화를 하며 '어, 자기 좋아하는 마카롱 사러 나왔지'하면서 결혼반지를 보여줬는데 누나가 진짜 때리고 싶었다더라. 요새 말로 '킹(열)받으라고'반지 낀 손으로 커피 마시는 것도 해봤는데 누나가 더 열받는다고 했다. 또 '네가 그거 가져갔니?'라고 했을 때 '응 내가 가져갔는데?'하면서 결혼반지를 보이면 더 열받을 것 같아서 해봤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박수받지 못할 캐릭터라도 자신의 색으로 도전해낸 윤박의 행보가 박수를 받은 작품. 윤박은 "아무래도 매 현장을 겪을 때마다 조금씩 예전보다 편안해지고 즐기려고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이번 현장에서도 카메라와 조금 더 친해지고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그게 저를 잘 다독여주셔서 다음 작품이 기대가 된다. 그게 저에게 분명히 쌓여있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 한 스텝을 밟았단 생각에 감사하고, 다음 현장에선 어떻게 더 성장할지, 더 떨어질지 모르겠으나 분명히 이번 현장에선 제 스스로 부족했던 부분도 느꼈고, '나 이런 것도 좀 할 줄 알았구나!'하는 것도 느낀 게 있다. 제 안에 은연중에 그런 것들이 쌓인 것"이라며 "앞으로도 도전을 하고 싶다. 제가 잘하는 연기와 캐릭터가 있겠고, 그것만 해서 칭찬을 받을 수 있지만 제가 조금 못하고 질타를 받더라도 도전거리가 될 만한 캐릭터를 하고 싶고, 그런 캐릭터의 대본이 온다면 제일 먼저 고를 것 같다"고 말했다.
'기상청 사람들'은 3일 방송을 끝으로 종영했다.
문지연 기자 lunam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