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일이 넘는 긴 부상으로 느슨해진 정신줄에 긴장감을 주기 위해 바디프로필 한번 찍어봤습니다.'
1년전인 4월 4일 '청각장애 스프린터' 공혁준(25·안양시청)은 자신의 SNS에 MZ세대 트렌드인 바디프로필을 찍어올렸다. 빛나는 우승컵 사이, 장애인육상 DB(청각장애) 100m 한국신기록(10초64) 보유자다운 탄탄한 라인에 조각 같은 식스팩, 자신만만한 포스에 시선이 꽂혔다.
내달 1일 개막하는 브라질 카시아스-두술 데플림픽을 앞두고 4일 이천선수촌에 입촌한 공혁준은 바디 프로필 이야기에 싱긋 미소를 지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부상으로 힘겨웠던 날, 운동을 그만둘까도 고민했다던 청춘은 스스로 길을 찾았다. 슬럼프를 '운동적'인 방법으로 풀어냈다. 두 달간 혹독한 식이요법과 퍼스널 트레이닝을 하며 찍은 '바프'. "만족은 못했지만 남다른 성취감이 있더라"며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내 인생의 모토는 '어떻게든 된다'다. 좋은 일이 있어도 어떻게든 되고, 나쁜 일이 있어도 어떻게든 된다. 그러니 다 '좋게좋게' 생각한다."
▶645일의 기나긴 부상 후 찾아온 한국신기록
'청각장애 육상선수' 공혁준의 인생은 얼핏 파란만장하다. 어머니는 난소암 투병중이고, 연년생 두 여동생도 청각장애를 갖고 있다. 평생 화장품공장에 다니며 삼남매를 키워낸 어머니는 2018년 11월 암 선고 후 일을 그만 두셨다. 2019년 한남대 체대생 '장남' 공혁준은 자퇴 후 안양시청 육상팀에 입단했다. 공혁준은 스무살 청춘에게 버거울 듯한 이 상황을 오히려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형편이 어려웠는데, 타이밍이 딱 맞아떨어졌다"고 했다. "어릴 때 남들보다 더 많이 놀았으니까 이젠 남들보다 더 고생해야죠"라며 웃었다.
공혁준은 경기도 평택 진위면 진위초중고 출신이다. 초등학교 때 받아쓰기 도중 선생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청각장애 판정을 받았다. 크고 묵직한 소리는 들리는데 호루라기 소리, 하이톤 등 특정 음역대를 듣지 못한다. 비장애인학교에서 친구들의 놀림에 위축될 때도 많았다. '어떻게든 된다'를 믿는 무한긍정 소년은 "그때도 '나쁜 관심도 관심'이라고 생각하며 버틴 것 같다"며 웃었다.
달리기를 유독 좋아했던 공혁준은 초등학교 6학년 때 계주 최종 역전주자로 '교내 영웅'이 된 후 '나 달리기 좀 잘하네' 처음 생각했단다. 체고 진학을 원했지만 입상 실적이 없어 불가능했다. 꿈없이 살아지는 나날. 공부를 하고 싶어도 선생님 말씀이 안 들리면 흥미를 잃었다. 고2때까지 집에서 게임만 했다. 공혁준은 "고3때 체대로 진로를 정하고 운동을 하게 되면서 꿈이 생겼다. 인생이 달라졌다"고 했다.
"체대 입시를 준비하면서 원장님도, 친구들도 운동 진짜 잘한다고 띄워줬다. 그러면서 밝아진 것같다. 내 긍정 마인드는 인복과 운동 덕분"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호루라기 소리를 잘 듣지 못해 스타트가 늦으면 그걸 따라잡기 위해 더 열심히 달린다. 따라잡는 훈련 덕분에 더 강해졌다. 안들리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극한의 상황이 내겐 더 좋은 운동이 됐다."
한남대 16학번, 평범한 체대생이었던 공혁준은 우리 나이 스무살에 장애인육상에 입문했다. "대학선배 (신)동민 누나(KGC인삼공사배구단 팀 매니저)가 장애인육상에 대한 정보를 알려줬다. 그 길로 대전장애인육상연맹을 찾아갔다"고 입문기를 털어놨다. "내 마음 속에 육상의 꿈이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고 했다. 2016년 10월 충남전국장애인체전. 남자육상 100m 11초61, 3위가 선수 공혁준의 공식 첫 기록이다.
그러나 안양시청 입단 후 꿈을 키우던 2020년 1월 태국 전지훈련 중 또다시 시련이 닥쳤다. 왼쪽 발바닥 부상, 세상의 모든 시술을 다해봤지만 차도가 없었다. 공혁준은 이를 악물었다. 안양시청 감독과 동료들의 믿음 속에 645일의 기나긴 부상을 이겨냈다. 그리고 복귀전이었던 지난해 10월 경북체전에서 그는 10초83, 개인 베스트 기록을 수립했다. 한달 후인 11월 전국장애인육상선수권에선 기어이 사고를 쳤다. 10초64, 한국최고기록을 찍었다. 그의 소감은 "내 기록을 보고 나도 놀랐다"였다.
▶'높이뛰기 월드챔피언' 우상혁 형의 데플림픽 응원, 큰 힘
"우리 아들, 국가대표야?" 데플림픽 출전을 위해 입촌한다는 말을 들은 어머니 이미숙씨의 첫 반응은 그랬다. "국제대회 나간다고 했는데, 엄마는 그게 국가대표인 줄 모르셨대요." 공혁준이 하하 웃었다.
국가대표 공혁준은 첫 데플림픽에서 남자육상 100, 200m, 남자계주 400, 1600m 등 4종목에 나선다. 특히 최근 기록 향상이 뚜렷한 100m에 기대를 건다. 이 종목 세계최고기록은 웬델 재스킨 주니어가 1996년 작성한 10초21. 데플림픽최고기록은 역시 재스킨 주니어의 10초62(1993년 소피아 대회)다. 공혁준의 10초64는 데플림픽최고기록에 0.02초차, 메달권이 가능한 호기록이다. 공혁준은 "이번 대회 100m는 10초6초대가 목표다. 그 기록만 나온다면 메달을 못따도 억울하지 않다"고 했다. "100m 200m와 계주에서 모두 메달을 따는 것이 목표"라며 눈을 빛냈다.
공혁준의 기록 급상승 뒤엔 안양시청 강태석 감독이 있다. '비장애인 남자 100m 한국신기록 보유자' 김국영의 오랜 스승이자 1998년 비공인 한국신기록(10초23)을 세운 스프린터 출신 전문가다. 강 감독은 공혁준을 영입한 이유를 묻는 우문에 "잘 뛸 것 같아서"라고 즉답했다. "(공)혁준이는 골격이 단거리선수로 타고난 면이 있다. 무엇보다 받아들이는 태도가 좋고 성실하다"며 폭풍성장의 비결을 전했다. "혁준이는 훨씬 더 잘 뛸 수 있다. 10초4까지도 가능하다. 이번 데플림픽은 메달권이 목표지만 4년 후엔 무조건 금메달이 가능한 선수"라고 호언했다.
청각장애 육상의 새 역사를 쓰는 공혁준에게 '대전 출신 높이뛰기 월드챔피언' 우상혁 이야기를 꺼냈더니 "아!"하고 반색했다. "대전서 운동을 시작할 무렵 '신체조건이 좋다. 잘 할 것 같다'고 먼저 인사해주신 따뜻한 선배"라고 했다. 우상혁과 빼닮은 '긍정청년' 공혁준이 당당한 다짐을 전했다. "얼마 전 여수에서 열린 비장애인실업선수권 대회에서 형을 마주쳤는데 '데플림픽 잘 하고 오라'고 응원해주셨다. 존경하는 형의 응원이 정말 큰 힘이 됐다. 데플림픽을 알릴 수 있는 육상선수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이천=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