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SC초점] 극장산업 존폐 위기…수천억원 적자, 더이상 버틸 힘이 없다

by

몇 해 전까지만 해도 1000만 관객을 넘기는 영화가 속출하고 해외에서는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리며 극장가는 순풍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현재 극장가는 산업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엄습하고 있다.

최근 들어 코로나19가 정점을 지나는 중이고 방역수칙도 완화되면서 방송이나 공연 등 대중문화 업계는 숨통이 트이고 있다. 가깝게 영화 제작사들은 활로 찾기라도 가능하다. OTT라는 새로운 시장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로지 관객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극장 산업은 이조차도 여의치 않다. 당장 집 앞 극장만 봐도 찾는 이들이 없어 한산하고 빈자리는 눈에 띄게 많다. '예매 전쟁'이라고 불리던 티켓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조차 남아도는 실정이다.

▶관람료 인상, 언 발에 오줌 누기

2020년 3월부터 극장은 아이러니에 놓였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면서 상영시간 제한과 '띄어 앉기'를 실시하는 등 '극장에 오지마'라고 외쳤다. 하지만 반대로 각종 이벤트 등으로 관객 끌어모으기에 혈안이 됐다. 반응이 없자 숱한 반대를 무릅쓰고 관람료 인상 카드를 두번이나 꺼내들었다. 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CGV는 오는 5일부터 관람료를 다시 1000원 인상하기로 했다. CGV가 인상을 확정하면서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도 인상을 계획중이다. CGV 측은 "제작 및 투자 배급 등 영화산업 생태계 전체가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게 가격을 인상하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근본적인 치유책이 없으면 관람료 인상은 '언 발에 오줌 누기'에 그칠 공산이 크다.

영화산업은 현재 악순환의 반복에 빠졌다. 관객이 없으니 투자배급사들은 개봉을 계속 늦추고 투자도 소홀하다. 제작사는 영화를 만들 돈이 없어 허덕이고 극장은 개봉할 영화가 없어 파리가 날린다. 그 사이 OTT 등 영화를 보는 패러다임까지 변화하면서 이 거대한 물결 속에 극장업은 풍전등화의 위기다.

▶관람 환경의 변화, 극장이 흔들린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발표한 '2021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자료'에 따르면 2021년 한국 영화산업은 1조 239억원의 매출로 2년 연속 감소 중이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2조 5093억원) 대비 약 60% 가까이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극장 매출감소율은 2019년(1조 9140억) 대비 70%가 줄었다. 한국 상업영화의 추정 수익률 역시 -50%에 육박해 영진위 조사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개봉하는 영화들의 대부분이 제작비 대비 50% 가량 손실을 보고 있는 셈이다.

CGV는 임차료 및 관리비 등 고정비 증가, 상영관 취식 금지로 인한 매점 매출 급감, 영업시간 제한, 좌석 띄어앉기, 방역비 부담 증가 등으로 인해 지난 2년간 국내에서만 약 3668억 원에 달하는 누적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누적 적자는 6400억원 정도다. 올해도 설 연휴가 있던 2월 이후 오미크론이 확산되며 상황이 개선되지 않아 2020년 2월 이후 25개월 연속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른 극장 사업자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2위 사업자인 룻데시네마의 영업적자도 2600억원에 달한다.

조성진 CGV 담당(상무급)은 "3년 동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2020년 3월 이후 단 한달도 흑자를 기록하지 못했다. 해외의 경우는 아예 정부에서 셧다운을 했기 때문에 정부 지원이라도 나왔지만 국내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운영을 계속해야한다. 계약기간이 남은 극장에 남은 임대료를 모두 주고 닫기도 어렵다. 극장에 관객이 들어야 돌파구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신영 롯데시네마 홍보팀장 역시 "방탄소년단 라이브 공연 실황을 중계하는 등 돌파구를 찾으려고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매출도 조금씩 완만하게 상승중이지만 뚜렷한 회복세를 보인다고 말하기는 힘들다"며 "한국 시장은 한국 영화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한국영화 시장이 정상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화가 있어야 극장도 산다

조 담당은 "결국 극장이라는 곳은 영화가 있어야 돌아간다. 그래서 지난 해 힘든 상황에서도 '모가디슈'와 '싱크홀' 같은 영화들에 50%씩 제작비 지원까지 한 것이다. 좋은 한국 영화들은 현재도 많이 쌓여있다. 하지만 관객이 들지 않으니 배급사들도 개봉을 계속 미루고 있다"며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같은 경우만 봐도 관객들이 볼 영화는 본다. 할리우드 영화들은 꾸준히 나오고 있는데 한국 영화가 없다"고 했다.

실제로 CGV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글로벌 흥행과 터키 인도네시아 등의 영업 재개로 매출이 26.2% 성장하면서 2020년에 비해 지난해 적자폭은 개선됐다. CGV는 지난해 12월말 기준 전세계 7개국에 596개 극장 4254개 스크린을 운영중이다.

그는 "할리우드는 전세계 관객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개봉이 가능하지만 한국 영화는 대부분 한국 관객을 보고 개봉한다. 흥행에 실패하면 손해를 만회할 길이 없으니 개봉을 미룰 수밖에 없다. 이 영화들이 개봉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에 지원을 요구하는 것도 한국 영화가 개봉할 때 주는 인센티브 같은 것들이다"라고 강조했다.

물론 극장업의 위기는 비단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다. 관객 감소에 더이상 버틸 수 없었던 미국 최대 영화관 체인 AMC도 3월부터 텐트폴 영화의 경우 1~1.5달러의 요금을 추가로 받고 있다. 세계 2위 영화관 체인인 씨네월드는 영국에서 지난해 코로나19로 문을 닫은 후 영업을 재개하면서 평균 영화 관람료를 40%나 인상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확진자의 폭증으로 이 시기가 연장될 수 있다는 어두운 전망도 나온다.

극장이 무너지면 영화 산업 자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영화 산업 종사자, 누구나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공포감은 더 크다. '이 긴 터널의 끝은 어디이고 그때까지 극장들이 버틸 수 있을까'하는 공포 말이다.

고재완 기자 star7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