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충무로 베테랑이 모여 피땀눈물을 착즙한 날것의 누아르를 완성했다.
1993년, 더 나쁜 놈만이 살아남는 곳 부산 변두리 포구 구암의 실세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밑바닥 건달들의 치열한 생존 싸움을 그린 범죄 액션 영화 '뜨거운 피'(천명관 감독, 고래픽처스 제작). 21일 오전 유튜브 라이브 생중계 채널에서 열린 '뜨거운 피' 제작보고회를 통해 베일을 벗었다.
이날 제작보고회에는 만리장 호텔의 지배인이자 평범한 삶을 꿈꾸는 구암의 실세 희수 역의 정우, 만리장 호텔 사장이자 오랜 시간 구암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손영감 역의 김갑수, 희수를 욕망으로 이끄는 마약 밀수꾼 용강 역의 최무성, 희수의 30년지기 친구이자 영도파 에이스 철진 역의 지승현,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혈기왕성한 건달 아미 역의 이홍내, 그리고 천명관 감독이 참석했다.
1990년대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된 이후 건달들의 표적이 된 부산의 작은 포구 구암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뜨거운 피'. 손바닥만 한 작은 항구에서 법도 규칙도 없이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밑바닥 인생들의 삶을 다룬 치열한 스토리와 강렬한 캐릭터, 날것의 액션 등 장르적 재미를 선사할 기대작으로 3월 극장 출사표를 던졌다.
특히 '뜨거운 피'는 세대를 불문하고 관객들을 사로잡아온 연기파 배우들이 한데 모여 눈길을 끈다. 한층 깊어진 내면 연기와 흡인력 강한 눈빛으로 인생 캐릭터 연기를 선보일 정우를 주축으로 김갑수, 최무성, 지승현, 이홍내까지 연기 구멍 없는 캐스팅으로 폭발적인 연기 시너지를 기대하게 한다. 여기에 소설 '고래' '고령화가족' 등 베스트셀러 작가인 천명관 작가의 첫 연출 데뷔작으로 많은 화제를 모았다. 천명관 감독은 한국형 스릴러의 대가인 김언수 작가의 동명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뜨거운 피'를 통해 섬세한 표현력과 특유의 통찰이 더해진 연출로 관객을 사로잡을 전망이다.
이날 정우는 "다른 작품을 촬영하던 중 '뜨거운 피' 제안을 받았다. 건달 이야기와 부산 배경의 이야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기존에 했던 캐릭터와 반복돼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읽고 난 뒤 많이 욕심이 났다. 그동안 밝은, 유쾌한 모습을 많이 보였는데 '뜨거운 피'는 장르 자체도 누아르에 거친, 날것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구나 욕심을 부릴 만한 캐릭터였다"고 애정을 쏟았다.
그는 "모든 배우가 다 그렇겠지만 연기를 더 잘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지 않나? 특히 '뜨거운 피'는 더 그랬던 작품이었다. 내가 잘 할 수 있을지 고민되고 불안했다. 작품을 끝내고 되돌아보니 희수라는 캐릭터 자체가 불안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라 그런 캐릭터의 모습이 내 실제 고민과 많이 맞닿아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한 "솔직히 정말 너무 힘들었던 작품이다.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다. 희수라는 캐릭터도 나도 불쌍했다. 희수는 더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유난히 다른 작품에 비해 공을 들였다. 정성스럽게 이 작품을 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이 작품은 전체 리딩 때부터 긴장을 많이 했다. 평소에 존경하고 동경하는 선배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어서 설렘과 두근거림이 있어 리딩 때 더 긴장했던 것 같다. 실전 촬영 때도 전날에 잠을 설쳐가며 마음을 졸였던 것 같다. 배우로서 에너지를 많이 받은 현장이었다. 특히 김갑수 선배는 따뜻한 엄마 품처럼 안식하고 쉼을 주는 에너지를 굉장히 많이 받았다. 아마 김갑수 선배와 작업한 후배, 동료 배우들은 이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알 것이다"고 김갑수를 향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천명관 감독은 "매번 볼 때마다 놀랐다. 연기 열정이 굉장했다. 내가 한 예상보다 그걸 더 뛰어 넘었다. 정우가 준비한 것들에 신뢰를 갖게 됐다. 그 열정을 영화 안에서 소화하려 노력했다"고 추켜세웠다.
김갑수는 "손영감은 굉장히 어려운 캐릭터다. 지역의 보스인데, 우리가 보통 가지고 있는 이미지의 보스가 아니더라. 모든 사람에게 부탁하는 보스다. 일명 읍소형 보스다"며 웃었다. 이어 "개인적으로 폭력성이 짙은 드라마나 영화는 출연하지 않았다. 따뜻한 장르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런데 '뜨거운 피'는 단순히 폭력 영화로만 볼 수 없었다. 작은 삶 안에 치열함이 느껴졌다. 또 '단명의 아이콘'이라고 하는데 이번에는 아니다. 극장에서 보면 아실 것이다"고 밝혔다.
더불어 정우와 호흡에 "호흡이 안 맞을 수 없었다. 정우가 워낙 잘한다. 선배로서 보면 후배들이 연기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보이는데 정우는 굉장히 노력파이고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개성이 있다. 내가 정우를 참 좋아한다. 이번 작품에서 제대로 호흡을 맞추니 내가 봤던 눈이 틀리지 않았다고 느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무성은 "'뜨거운 피'는 인간의 내면을 차지고 맛깔스럽게 담은 작품이다. 이 안에 용강 캐릭터는 내가 도전해보고 싶었던 캐릭터다"며 "액션 신이 인상 깊다. 원 신 원 컷의 액션 신이 있었는데 20번 넘게 촬영했다. 액션을 오래 찍는데 힘들지는 않더라. 보통 힘들어서 그만 찍길 바라기도 하는데 그 장면은 더 잘 찍고 싶었다"고 곱씹었다.
지승현은 "철진은 초고에서 작은 역할이었다. 캐스팅도 마지막에 됐다. 당시 드라마를 두 작품 하고 있었다. 그런데 '뜨거운 피'는 정말 하고 싶더라. 철진이라는 역할이 너무 하고 싶어서 출연하게 됐다"며 "정우 형과는 '바람'(09, 이성한 감독) '이웃사촌'(20, 이환경 감독) 등에서 호흡을 맞췄다. 정우가 부산사투리를 하는 작품을 하라 때 늘 내가 나왔다"고 웃었다. 이에 정우는 "업계에서는 '정우가 나오면 지승현도 나온다'라는 말이 있기도 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홍내는 "청춘의 젊은 에너지를 표현하고 싶었다. 어디로 튈 줄 모르는 럭비공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정우 선배를 사랑하게 될 정도로 선배를 많이 의지하고 쫓아가며 아미를 소화하게 됐다. 정우 선배는 연기가 이렇게 재미있고 흥분된다는 걸 알게해준 선배다. '뜨거운 피'를 촬영할 때 질감이 아직 남아있다"고 고백했다.
천명관 감독은 "원래 영화 감독을 꿈꿨다. 충무로에 발을 디딘지 30년 만에 연출을 하게된 것 같다. 연출을 하다 보니 재미있는 것 같다. 복잡한 방식이지만 여러 사람들과 협업하는 작업이 좋았다. 김언수 작가의 책이 나오기 전 원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김언수 작가의 책이 나온 뒤 김 작가가 내게 연출 제의를 했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워서 고사했는데 초고를 받고 하루 만에 읽었다. 남에게 주기 너무 아깝더라"고 연출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보통 누아르 속 건달 이야기를 할 때 허탈함을 느꼈다. 그런데 이 소설을 보고 나니 건달 세계가 어떻게 구성됐고 어떤 동기를 가졌는지를 알게 됐다. 이런 공감이 소설을 영화화하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어 캐스팅 과정에 "마치 처음부터 정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다 모이고 난 뒤 캐릭터와 일체화된 느낌이었다. 이들의 그림만으로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고 자신했다.
김언수 작가의 동명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뜨거운 피'는 정우, 김갑수, 최무성, 지승현, 이홍내 등이 출연하고 소설가 천명관 작가의 첫 영화 연출 데뷔작이다. 오는 3월 23일 개봉한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키다리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