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작년 LA 에인절스 오타니 쇼헤이는 102년 전 '밤비노의 환생'이었다.
에이스와 중심타자로 동시에 맹활약하는 건 만화에서 가능한 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오타니는 지난해 그 만화 속 주인공을 현실의 세계로 끄집어냈다. 1919년 베이브 루스 이후 102년 만에 '투타 겸업' 신화를 재현해낸 것이다.
100여년을 사이에 두고 뛴 두 선수를 객관적으로 비교하긴 어렵지만, 투타 합계 bWAR은 1919년 루스가 9.9(타자 9.1, 투수 0.8), 2021년 오타니가 9.0(타자 4.9, 투수 4.1)으로 루스가 조금 더 높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전반에 끼친 임팩트와 팬들의 반향을 감안하면 루스보다 오타니의 손을 들어줘도 무리는 아닐 듯 싶다.
지명타자제도가 없던 20세기 초반 투수가 타자를 겸하는 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21세기의 투타 겸업은 특별한 일이다. 능력치를 따지기 전 몸이 견뎌낼 수 있느냐로 논쟁이 먼저 붙기 때문이다. 일본프로야구 원로 장 훈은 2020년 시즌을 앞두고 오타니가 투타 겸업에 대비해 근육질 몸을 만들자 "프로야구는 동네야구가 아니다. 상반신만 단련해서는 안된다. 투수는 러닝을 해야 한다"며 쓴소리를 던진 적이 있다. 언젠가는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오타니가 언제까지 투타 겸업을 이어갈 수 있을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본인도 시점을 정해놓지 않았고, 그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힌 적도 없다. 다만 그가 2017년 말 메이저리그 구단들과 협상할 때 투타 모두 마음껏 할 수 있는 팀을 골랐다는 점에서 향후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건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루스는 투타 겸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투수를 포기한 건 순전히 개인적인 욕심에서 비롯됐다고 알려져 있다. 4~5일에 한 번 선발등판하거나 대타로 가끔 타석에 서는 게 연봉 측면에서 불리하다고 생각하던 터에 1차 세계대전에 빅리거들의 참전이 늘어나면서 선수 부족 사태가 생기자 주전 타자로 뛸 기회를 잡았다. 1919년 타자로 성공을 거둔 직후 1920년 뉴욕 양키스로 이적한 루스는 밀러 허긴스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세기의 홈런타자로 거듭났다.
그러나 지금 오타니는 둘 중 하나를 포기할 마음도, 이유도 없다. 투수로는 구속, 타자로는 타구 속도로 실력을 가늠한다면 투타 모두 절정에 올랐기 때문이다. 지난해 오타니는 최고 101.1마일, 평균 95.6마일의 직구를 던졌다. 또한 4월 13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전에서 7회 119마일짜리 2루타를 터뜨렸는데, 이는 2015년 스탯캐스트 트래킹이 시작된 이후 좌타자로는 가장 빠른 타구 속도라고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오타니가 언젠가 하나에 집중해야 한다면 투수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100마일 직구를 던지는 투수는 흔치 않아 경쟁력이 있고 롱런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명예의 전당 투수 존 스몰츠는 지난해 6월 ESPN 인터뷰에서 "오타니는 모든 사람들이 응원하는 특별한 선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언제까지 두 재능을 잃지 않고 롱런할 수 있을까. 오타니는 피칭에만 전념한다면 제이콥 디그롬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타자를 포기하라는 소리다.
두 차례 사이영상에 빛나는 디그롬은 평균 99.2마일 강속구를 앞세워 압도적인 피칭을 펼치는 현존 최고 에이스다. 현역 시절 투수 실버슬러거를 차지하며 타격에도 재능을 보였던 스몰츠는 오타니가 디그롬과 같은 자질을 갖춘 만큼 피칭에만 집중하는 게 좋다고 조언한 것이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