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아시아 야구를 수놓은 또 한 명의 이방인 타자가 퇴단을 선언했다.
일본 프로야구(NPB) 한 시즌 60홈런을 터뜨리며 이 부문 아시아 최다 기록을 세운 블라디미르 발렌틴(38)이 지난 23일 트위터를 통해 "일본 프로야구에서 은퇴한다"고 밝혔다.
발렌틴은 야쿠르트 스왈로즈와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2011~2021년까지 활약했다. 통산 타율 0.266, 1001안타, 301홈런, 794홈런을 쳤고, 센트럴리그 3번의 홈런왕과 한 번의 MVP에 올랐으니 NPB에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긴 셈이다. 20대 초반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와 신시내티 레즈에서 3년을 뛰었지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NPB를 옮긴 뒤 기량을 꽃피웠다.
그는 카리브해 네덜란드령 섬나라 큐라소 태생으로 16세 때인 2000년 시애틀에 입단해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발렌틴은 네덜란드 대표팀으로 2004년 아테네올림픽, 2013년과 2017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015년 WBSC 프리미어12에 각각 출전했다.
그의 활약이 돋보였던 대회는 2017년 WBC다.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1라운드에서 한국이 네덜란드에 0대5로 패할 때 그는 4번 우익수로 출전해 3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4홈런, 12타점, 16안타, 10득점을 올리며 대회 4개 부문 1위를 차지해 주목을 받은 그는 앞서 2013년 WBC에서도 한국을 5대0으로 누를 때 3타수 1안타 1타점으로 활약했다.
발렌틴은 2020년 소프트뱅크 옮겨 NPB 생활을 이어갔지만, 첫 해 타율 1할6푼9리, 9홈런, 작년에는 22경기에서 타율 0.182, 4홈런으로 하락세를 피하지 못했다. 30대 후반의 나이를 이제는 감당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은퇴했다고 보면 된다.
물론 발렌틴은 국내 팬들에게도 꽤 익숙한 선수다. 그가 2013년 야쿠르트에서 60홈런을 터뜨리며 NPB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을 세울 때 일본 언론들은 오사다하루의 기록을 깼다고 강조했다. 오사다하루는 1964년 55홈런을 날렸다. 2001년 긴테쓰 버팔로스 터피 로즈, 2002년 세이부 라이온스 알렉스 카브레라가 나란히 55개를 터뜨려 오사다하루와 어깨를 나란히 했으나, 일본 팬들은 오사다하루를 NPB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 보유자로 떠받들었다. 로즈가 2001년 55홈런을 친 뒤 상대팀이 고의4구를 남발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이 대목에서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하는 선수는 사실 이승엽이다. 2003년 56홈런을 때리며 이미 오사다하루의 아시아 기록을 깼기 때문이다. 아시아 무대로 따지면 발렌틴이 NPB에서 10년 만에 이승엽의 벽을 넘어섰다고 보는 것이 옳다.
발렌틴은 2013년 9월 15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 시즌 56, 57호 홈런을 연달아 쏘아올리며 새 기록을 세웠다. 그날 이승엽은 대전에서 한화 이글스와 원정경기를 하고 있었다.
당시 발렌틴의 홈런 소식을 전해들은 이승엽은 "정말 대단하다. 내가 오릭스에 있을 때 잠깐 보기는 봤는데, 직접 치는 것을 본 건 WBC 때였다. 파워도 대단하고 공을 보는 눈도 좋다. 빈틈이 없는 타자"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승엽은 그러면서 "우리하고 일본은 리그가 다르다. 내 기록은 한국 기록이고, 발렌틴은 일본 야구 기록이다. 무대가 다르다"면서 "물론 한국 선수가 일본에서 그런 기록을 세웠다면 훨씬 의미가 깊을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