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내년 목표요? 팬들한테 너무 미안한게 많은데…"
FA 계약을 맺고 '롯데인'으로 돌아온 정 훈(35)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계약을 마친 시원함과 뿌듯함으로 가득했다.
정 훈은 FA 선언 이후 에이전트에게 협상에 대한 모든 것을 맡겼다. 근 2년간 거둔 생애 최고의 성적을 거둔 만큼 자신감도 있었다. 잠시나마 야구를 잊고, 머리를 비운 채 가족들과 함께 하는 행복에 전념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협상이 길어졌다. 새해가 밝았을 때, FA 신분으로 남은 선수는 정 훈 1명 뿐이었다. 미국에서 돌아온 양현종(KIA 타이거즈)을 포함해 총 15명의 FA 중 14명이 계약을 마친 뒤에도 정 훈은 '마지막 FA'로 남아있었다.
정 훈에게 지난 두 달간의 속내를 물었다. "롯데 자이언츠 정 훈입니다"라며 기분좋게 전화를 받은 그는 "솔직히 그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다"는 답이 돌아왔다. 계약서에 사인을 마친 뒤 집에 돌아온 정 훈은 우선 꿀잠을 실컷 잤다고. 손아섭(NC 다이노스)을 놓친 롯데 팬들에게도 위안이 되는 소식이었다.
계약 조건은 3년 18억원(계약금 5억원, 연봉 11억 5000만원, 옵션 1억 5000만원). 정 훈으로선 조금 아쉬움이 남지만, 롯데 입장에선 최선을 다한 조건이었다. 무엇보다 2년이나 2+1년이 아닌 3년의 계약기간을 보장했고, 보장액수도 16억 5000만원에 달했다. 정 훈의 지난해 연봉은 1억원이었다.
"시장의 평가가 곧 현실이다. 아쉽다고 하면 내 얼굴에 침뱉기 아닌가. 무엇보다 '3년 보장'에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 나를 필요로 하는 구단의 진심이 느껴졌다. 난 무조건 롯데에 남는게 1순위였으니까, '3년'을 보고 빠르게 결심할 수 있었다."
정 훈은 "어차피 내가 뒤로 밀릴 줄은 알았다. 좋은 선수가 워낙 많이 나오지 않았나"라면서도 "혼자 남은게 한 열흘 되나? 혼자 남은 뒤론 인터넷을 끊었다"며 힘들었던 속내도 고백했다. 그런 그를 위로해준 건 팬들의 마음이었다.
"내가 팬들에게 이렇게 사랑받는 선수라고 느낀 건 처음이었다. 물론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남아달라'는 팬들의 메시지가 여러가지 방법으로 내게 전해져왔다. 정말 뜨거운 마음을 실감했다. 내가 정말 큰 사랑을 받고 있구나."
팀동료들 역시 정 훈을 응원했다. '캡틴' 전준우는 공개적으로 "남아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 훈은 "(전)준우 형, (이)대호 형은 다 겪어본 사람들 아닌가. 그 스트레스를 아니까, 계약 얘긴 안하고 전화를 자주 걸어주더라. 후배들은 '형님 같이 하고 싶습니다' 슬그머니 이런 얘기 많이 하더라. 말로만 날 좋아하는줄 알았더니…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웨이트는 꾸준히 했고, 복잡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산을 자주 올랐다. 이제 공을 잡고 다시 실전감각을 되살려야할 때다. 롯데는 오는 2월 2일 스프링캠프를 시작으로 2022시즌 준비에 돌입한다. 그는 "(손)아섭이가 정말 좋은 선수지만, 또 그 빈자리를 메워줄 선수가 나오지 않겠나. 나와 대호 형이 열심히 돕겠다"고 강조했다.
새 시즌 목표로는 '20홈런'과 '플레이오프 진출'을 꼽았다. 왜 한국시리즈가 아니라 플레이오프일까.
"솔직히 팬들께 너무 미안하다. 그 동안 내 입으로 뱉고 지키지 못한 말만 해도…'대호 형 마지막 시즌인데 한국시리즈 가서 우승하겠습니다' 하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내가 그동안 '내년에 다릅니다'만 몇 번을 말했나. 일단 개인적으론 20홈런을 꼭 치고 싶다. 그리고 팀 성적은 좀더 현실적인. 진심을 담은 얘기를 하고 싶었다. 5위라도 좋으니, 플레이오프를 가겠다. 날 사랑해주신 팬들의 마음에 결과로 보답하고 싶다."
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