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롯데 자이언츠는 성민규 단장 취임 이래 선수 계약에 '합리화'를 추구해왔다.
그동안 구체적인 기준 없이 이뤄져왔던 선수 계약 전략을 대폭 바꿨다. 치밀한 계산과 미래 가치를 따져 금액을 책정하고, '오버페이'를 지양해왔다. 내, 외부 FA 협상에 동일하게 적용된 부분이다.
협상 기간 자체도 길었다. 지난 2년간 롯데 FA 계약은 모두 해를 넘겼다. 올해도 내부 FA 2명 중 손아섭(34)이 NC 다이노스 유니폼을 입은 가운데, 남은 1명의 FA 정 훈(35)과 계약도 결국 해를 넘겼다.
FA 시장 초반 정 훈은 손아섭에 비해 이동 가능성이 높은 선수로 지목됐다. 보상 규모가 적은 C등급이기에 운신의 폭이 넓은데다, 1루수 뿐만 아니라 중견수까지 커버할 수 있는 활용 범위, 최근 두 시즌 간의 타격 상승세 등이 강점으로 꼽혔다. 그러나 적지 않은 나이인 그에게 장기 FA 계약을 제시하는 팀이 나올지는 미지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 훈의 협상 창구는 친정팀 롯데로 좁혀지는 모양새다.
그렇다면 롯데와 정 훈의 협상은 어떻게 흘러갈까.
성민규 단장은 손아섭이 NC로 이적한 뒤 생긴 외야 공백을 추재현, 신용수, 김재유 등 대체 자원으로 메우겠다는 구상을 드러냈다. 세 선수 모두 손아섭만큼의 기량을 갖추진 못했으나, 각자 가진 장점에 따라 활용해 플레잉타임을 쌓으면 발전 여지가 충분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정 훈이 맡아온 1루는 상황이 다르다. 정 훈이 이탈할 경우 롯데가 활용할 수 있는 대체 자원은 사실상 없다. 이대호가 1루 풀타임을 뛰거나, 성 단장이 부임 후부터 추진해온 전준우의 1루수 포지션 변경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은퇴를 바라보는 이대호의 풀타임 수비는 사실상 힘들고, 전준우에게 1루를 맡긴다는 구상은 또 다른 외야 공백을 초래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고교 시절 내야수로 뛰다 롯데 유니폼을 입은 뒤 외야로 갔던 나승엽에게 1루를 맡기거나, 3루수, 유격수 대체 자원으로 꼽았던 김민수에게 1루를 맡긴다는 그림도 그리고 있으나, 현 시점에선 모두 물음표가 붙는 구상이다. 결국 정 훈은 지금의 롯데에겐 공수 안정감 유지를 위해서라도 붙잡아야 할 전력인 셈이다.
롯데를 향한 정 훈의 충성심은 여전하다. FA자격 취득 후에도 롯데에 남고 싶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다만 충성심과 선수로서의 가치를 인정 받는 것은 별개의 문제. 오랜 기간 롯데를 위해 헌신해온 정 훈의 협상 결과는 내부 동료, 후배 뿐만 아니라 외부 선수들에게도 큰 관심사다.
롯데는 그동안 FA 협상 과정에서 일명 '48시간룰'을 즐겨 써왔다. '합리적' 산출 과정을 거쳐 책정한 최종 오퍼를 선수에게 제시하고, 48시간 내에 수락 여부를 결정하라는 식이었다. 이를 통해 오버페이를 막고 협상 주도권을 쥐는 효과를 얻었다. 다만 48시간룰의 적용법엔 차이가 있었다. 롯데가 FA계약을 성사시킨 전준우, 안치홍, 이대호에겐 48시간룰이 적용되지 않았다. 오랜 조율 과정을 거쳤고, 협상 시간도 길게 부여했다. 계약시점 기준으로 이들보다 나이가 많고 '필수전력' 꼬리표를 붙이긴 어려운 정 훈이 48시간룰을 벗어난 협상을 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롯데는 정 훈 잔류를 추진하되,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외부 목소리에 흔들리지 않겠다는 의지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손아섭이 NC행을 택한 뒤 롯데 안팎의 민심은 크게 요동치고 있다.
성 단장은 최근 정 훈과 만남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물밑에서 오가던 양측 계약에 결정권자와 당사자가 만난 것은 결말에 임박했음을 시사하는 대목. 과연 롯데와 정 훈의 협상은 어떤 결말에 다다를까.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