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런웨이를 휩쓴 톱 모델에서 이제 전 세계가 주목하는 배우가 된 정호연(27). 그에게 '오징어 게임'과 새벽은 새로운 무대이자 기회, 절로 겸손해지는 값진 시간과 경험이 됐다.
456억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황동혁 각본·연출). 극 중 소매치기까지 하며 거칠게 살아온 새터민으로 가족이 모일 수 있는 마지막 희망으로 게임에 참가한 67번 새벽을 연기한 정호연이 1일 오전 스포츠조선과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오징어 게임'을 선택한 이유부터 작품에 쏟을 열정을 모두 털어놨다.
한국의 경제 성장이 궤도에 오르던 7·80년대에 유행했던 한국의 골목길 놀이 오징어 게임을 모티브로 한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독창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펼쳐낸,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거대한 스케일과 게임을 통해 인간의 민낯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참가자들의 모습을 통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아이러니를 가감 없이 보여줘 호평을 얻었다.
어른들의 잔혹 동화로 꼽히며 지난 17일 콘텐츠 공개 직후 전 세계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오징어 게임'의 인기는 역대급 그 자체다. 글로벌 OTT 콘텐츠 순위 사이트 플릭스 패트롤의 지난달 30일 집계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은 국내를 비롯해 북미, 아시아, 유럽, 중동, 남미 등 공개된 전 세계 83개국 중 82개국에서 TV 프로그램(쇼) 부문 1위를 차지, 뜨거운 반응을 입증하고 있다.
이렇듯 '오징어 게임'을 향한 신드롬 그 중심에는 파격적인 설정을 위화감 없이 그려낸 배우들의 강렬한 연기가 있었다. 특히 2010년 모델로 데뷔, 2013년 On Style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 4'에서 공동 준우승을 차지하며 얼굴을 알리고 이후 활동 11년 만에 '오징어 게임'으로 첫 연기 도전에 나선 정호연의 존재감이 압도적이다. 정호연은 탈북 이후 죽기 살기로 돈을 벌어 보육원에 남겨진 동생과 북에 있는 부모님을 탈북시켜 함께 살고 싶어 하는 새벽에 녹아들었다.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해져야만 했던 새벽으로 완벽히 변신한 정호연은 생존을 위해 터득한 날 것 같은 액션은 물론 북한 사투리까지 소화하며 '오징어 게임'의 인기를 주도했다.
이날 정호연은 '오징어 게임' 출연 과정에 대해 "지금의 소속사와 계약을 한 지 한 달도 안됐을 때 '오징어 게임' 오디션 이야기가 나왔다. 그 당시 멕시코 촬영을 끝내고 여유 있게 뉴욕 패션 위크를 갔던 상황이었다. 거기에서 메신저에 '오징어 게임' 오디션 영상을 보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때 최대한 빨리 영상을 보내달라고 해서 당황했다"며 "오디션 영상이 처음이라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 몰랐다.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3일간 최선을 다해 촬영해 영상을 보냈다. 사실 그때는 연기하는 방법 자체를 몰랐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계속 새벽을 찾아갔던 것 같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새벽이랑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오디션 영상이 완벽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이게 과연 최선일까 싶었다. 다만 3일간 새벽이만 바라보고 산 시간이 너무 소중했고 누군가 가치 있게 봐준다면 당장이라도 달려갈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또한 "영상을 보고 대면 오디션이 진행됐는데 처음에는 굉장히 떨었다. 누군가 앞에서 연기를 한다는 게 처음이라 떨렸다. 나도 이상했던 부분이 모델로 사람들 앞에서 포즈도 취하고 워킹도 하는데 연기는 모델 일과 다르게 심각하게 떨리더라. 연기를 시작하고 너무 심장이 뛰어 카페인 음료를 끊기도 했다. 평소 배우 에이미 아담스를 좋아하는데 그 배우는 자기가 맡은 역할에 대해 '이 역할을 연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라는 생각을 한다고 하더라. 나 역시 그랬다. 무엇보다 나는 '오징어 게임' 오디션에 합격 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 오디션 합격 소식을 듣고 소름이 돋았다. 실감이 안 됐다. 이후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큰일이 났다. 부담과 공포가 몰려왔다"고 곱씹었다.
전 세계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모델로 커리어를 쌓은 정호연. 연기를 도전하게 된 계기도 특별했다. 정호연은 "해외에 모델 일을 하면서 혼자 생활했다. 그래서 생각하는 시간도 많아져 그 시간에 영화, 드라마, 책을 읽는 일이 많았다. 내 개인적인 커리어에서 정점을 찍은 순간도 있었고 내려오는 순간도 있었다. 내려오는 순간에 시간이 많아져 할 게 많아졌다. 시간적 여유가 생겨 해외에서 연기 수업을 한번 나가보기도 했는데 안 되겠다 싶었다. 그때는 부끄럽기도 했고 영어도 못 했다. 그리고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모델들은 1년에 홀리데이가 몇 번 있는데 그때 한국으로 들어와 연기를 배우게 됐다. 좋은 영화, 책을 읽으면서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 도전하게 됐다"고 답했다.
그는 "정작 '오징어 게임'을 시작하고 초반에는 두려움을 못 떨쳐냈다. 세계 무대에서 런웨이도 섰는데 첫 미팅 때부터 너무 떨렸다. 모델하면서도 가져보지 못한 긴장이었다. 심리적으로 부담이고 촬영 초반에도 부담을 버리지 못했다.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황동혁 감독에게 '밥 한번 먹어달라'고 하기도 했다. 사실 황 감독을 만나야 하는 정확한 이유는 없었다. 서로 사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고 답했다.
이어 "그리고 황 감독이 내게 갖는 신뢰에 스스로 확신을 가지고 싶었다. 황 감독이 '너는 이미 새벽이고 그걸로 충분하다'라고 했다. 내 연기는 엄청 잘하는 연기가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연기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부담감을 극복했다. '오징어 게임'의 새벽이는 많은 대화와 많은 고민으로 만들어진 작품인 것 같다. 모두가 열심히 하겠다는 신뢰가 생겨 어느 순간부터 불안하지 않았다. 몰입해서 최선을 다했다"고 설명했다.
'오징어 게임', 그리고 배우 정호연을 향한 전 세계의 폭발적인 관심에 솔직한 기분도 밝혔다. 정호연은 "사실 완벽히 실감이 나는 건 지금 이 순간인 것 같다. 많은 취재진과 인터뷰하는 것도 신기하다. 아직 피드백을 물리적으로 받고 있지 않아 정신도 없고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싶다. 떨리기도 하고 정말 좋은 일이 생긴 것 같다"고 고백했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유에 "'오징어 게임'은 기본적으로 보편적인 인간들의 이야기를 하는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전 세계 팬들이 이해하기 힘든 스토리도 아니고 비주얼적으로 모든 사람이 느끼기에 처음 보는 비주얼이지 않나? 그런 부분에 흥미를 가지는 것 같다. 또 한국적인 게임 요소도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보통 게임이라고 하면 어렵게 느껴지지 않나? 하지만 우리 게임은 쉽게 따라 할 수 있다. 해외에서 달고나 뽑기가 굉장히 비싸게 판매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런 지점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구나' 싶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연예계 절친인 블랙핑크의 멤버 제니를 언급하며 "제니가 '오징어 게임' 흥행을 너무 축하해주고 실제로 촬영 현장에 커피차도 보내줬다. SNS에 '오징어 게임' 축하도 많이 해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오징어 게임'을 하면서 감사한 분들 리스트에 제니는 꼭 있다.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더라. 세상에서 그렇게 착한 친구를 처음 봤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비단 제니뿐만이 아니었다. 정호연의 연기 도전을 지지하고 응원한 건 9년째 공개 연애 중인 9세 연상 연인이자 선배 이동휘도 있었다. 정호연은 "아무래도 (이동휘가) 나를 엄청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응원을 많이 해주고 있다"며 "이동휘는 정말 좋은 선배이자 좋은 친구이자 좋은 사람이다. 내게 엄청 격려도 많이 해주고 있고 걱정도 많이 해주고 있다. 때론 아빠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머쓱하게 웃었다.
사랑스럽고 겸손한 정호연은 '오징어 게임' 공개 직후 불거진 사투리 연기에 대한 혹평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는 "사투리에 대한 피드백을 잘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것 같다. 새벽은 남한에 온 지 꽤 됐다. 남한 사람들 앞에서 북한말을 쓰는 것 자체가 이득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는 캐릭터다. 어린 나이에 넘어와 빨리 사투리를 고쳤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부에서도 새벽이 사투리를 쓰는 지점에 순간 화가 났을 때와 동생과 있을 때로 규정했다"며 "나는 실제 새터민 선생님과 북한 사투리 연습을 했다. 새벽은 함경북도 사투리를 쓰는데 일반 북한 사투리보다 많은 분에게 익숙하지 않은 사투리다. 사투리뿐만 아니라 연기적으로도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할 것이고 발전하겠다. 내 연기는 많은 스태프, 선배들이 함께 만들어줬다. 앞으로 역량도 많이 키우겠다"고 당찬 포부를 드러냈다.
'오징어 게임'은 이정재, 박해수, 오영수, 위하준, 정호연, 허성태, 아누팜 트리파티, 김주령 등이 출연했고 '남한산성' '수상한 그녀' '도가니'의 황동혁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