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보이지 않는 곳에서 팀을 위해 묵묵히 소임을 다하던 투수.
끊임 없는 도전 속에 20년 세월이 흘렀고, 유니폼을 벗었다.
고난의 세월을 자신만의 비장의 무기로 승화시키며 팀에 꼭 필요한 선수로 끈질기게 살아남았던 주인공. 롯데와 넥센의 '마당쇠' 이정훈(43)이다. 아마추어 지도자로 변신해 프로 20년 노하우를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이정훈은 최근 스포츠조선과의 통화에서 "공모를 통해 공석인 원주중학교 감독직을 맡게 됐다"고 이야기 했다.
삶의 방향을 바꿀 큰 결단이었다. 안락함을 버린 또 한번의 힘겨운 도전길이다.
지난 2017년 부터 2년간 원주고 투수코치를 역임했던 이 감독은 최근 2년 간 지역에서 야구 레슨장을 운영했다. 불철주야 노력해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이번 중학교 사령탑 부임으로 안정된 수익원이던 레슨장은 접어야 했다.
"어렵죠. 힘들어요. 선수도 부족하고요. 무엇보다 식구들한테 좀 미안하죠.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았는데 어려운 길만 찾아가는 것 같아서요. 원주중학교가 어렵다며 주위에서 도와달라고 해서 고심 끝에 원서를 넣었어요. 서류심사에 면접까지 통과해서 국가고시 치르듯 어렵게 합격했습니다(웃음)."
어깨가 무겁다.
현재 원주중학교는 경기를 뛸 선수가 빡빡할 만큼 빠듯한 상황이다. 선수 충원부터 지역 강팀으로의 재건까지 모두 다 이 감독의 몫이다. 오직 사명감 하나로 중책을 기꺼이 맡았다.
"원주고 투수코치 할 때 선수들이 기본기가 부족하다는 점을 느꼈어요. 아랫 단계 즉, 중학교 때 부터 훈련방식이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이번에 중학교 감독을 맡게 된 이유기도 해요. 게임 보다 육성을 통해 고교 진학 이후 스스로 훈련할 수 있는 기초를 만들어줄 생각입니다."
20년 프로생활 동안 이정훈은 그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은 투수였다.
심각한 부상도 있었고, 선수협 활동과 연봉 이견 등으로 구단에 밉보여 힘든 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
하지만 온갖 어려움을 의지와 노력으로 개척해 나갔다.
각고의 노력으로 서른이 넘은 나이에 역주행으로 '시속 150㎞ 돌파'와 '연봉 1억원'의 두가지 꿈도 이뤘다. 굴곡졌던 선수 시절. '지도자' 이정훈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구속을 148㎞에서 152㎞로 4㎞를 늘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많이 노력했고, 발전이란 단어를 느껴봤던 순간이었죠. 제 노력의 결과였던 만큼 그 과정을 학생 선수들에게 이해시키는 게 쉬웠어요. 노력 없이, 과정 없이 쉽게 이룬 분들은 어쩌면 모를 수 있는 부분이니까요."
실제 이정훈 감독은 원주고 코치 시절 우완 하영진을 키워 프로에 입단시켰다. 2차 6라운드로 LG트윈스에 입단한 하영진은 기대받는 유망주다.
현역 시절, 단단한 벽과 같았던 권위주의에 저항했던 이정훈 감독.
폐해를 잘 알기에 그 누구보다 '오픈 마인드'를 강조하는 지도자다.
"저는 저만의 방식을 고집하지 않아요. 늘 제 지도 방식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하죠. 사실 정답은 없잖아요. 선수의 피지컬 수용 능력과 스타일에 맞는 방식을 선택하도록 해야 합니다. 제가 경남고 1학년 때 모든 선수들이 밤마다 스윙을 돌렸어요. 저는 체력이 약해 헬스장에 가면 안 되느냐고 부탁했고, 감독님께서 허락해주셨어요. 선배들한테 혼이 나긴 했지만, 그때 감독님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거에요. 저도 그렇게 배웠으니까 이제 원주중학교에도 열린 문화를 만들어야죠. 권위적이기 보다 선수들과 같이 뛰어 놀고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그런 지도자가 되어 보려 합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