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코로나19도 FA인플레이션을 막을 수 없었다.
두산 허경민의 4+3년 총액 85억 원 계약을 신호탄으로 대형 계약이 줄줄이 이어졌다.
SK 최주환이 4년 42억 원, 삼성 오재일이 4년 50억 원, KIA 최형우가 3년 47억 원, 두산 정수빈이 6년 56억 원의 대박 계약을 이어갔다.
뒤로 갈수록 예상보다 높은 계약이 이뤄졌다.
코로나19 불황을 무색하게 한 FA 인플레이션. 그야말로 경기 침체 속에서도 물가가 오르는 FA시장의 기묘한 스태그플레이션이었다.
이유가 뭘까. '위-아래' 팀 간 미묘한 심리 속에 답이 있다.
불과 2년 전인 2018년에만 해도 꼴찌였던 NC다이노스의 통합 우승이 하위 3팀을 자극했다. NC의 변화와 성과를 지켜본 하위 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1등 팀의 존재감은 아래 팀들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작은 움직임에도 크게 '반응'했다. 의도치 않게 알짜 FA 매물 가격을 올린 건 다양하게 해석된 NC의 참전 제스처였다.
크게 두가지로 분석해볼 수 있다.
예년과 가장 큰 차이점은 하위 3개팀의 동시 참전이었다.
삼성, SK, 한화의 변화 의지가 강했다. 때 마침 최대 약점이던 고질적 취약 포지션에 치료제 같은 선수들이 우루루 시장에 나왔다.
하위 3팀이 한꺼번에 외부 FA 시장에 뛰어들었다. 실질적 수요자의 등장. 자연스레 수요 시장에 '경쟁 구도'가 형성됐다.
9위 SK 와이번스의 가장 큰 약점은 키스톤플레이어.
2루수 수비까지 검증받은 강타자 최주환이 나왔다. 일찌감치 적극적 구애에 나섰다. 뒤늦게 경쟁이 격화됐지만 끝까지 방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결국 4년 총액 42억 원에 최주환과의 계약에 성공했다.
8위 삼성 라이온즈도 3년 만에 FA 큰손으로 등장했다. 구멍으로 지적되던 1루수 거포 쇼핑에 나섰다. 마침 적임자, 오재일이 있었다. 원 소속팀 두산에 잠재 고객까지 있었지만 삼성은 당초 책정가보다 몸값을 높여 총액 50억 원에 도장을 찍었다.
하위 팀들의 잇단 계약 소식에 최하위 한화 이글스도 다급해졌다.
이용규의 이른 방출 공백을 메울 중견수가 필요했다. 새 외인 타자도 외야가 아닌 내야수 라이언 힐리를 영입한 터. 타깃은 정수빈이었다. 몸값을 40억 원으로 확 올려 통 큰 베팅을 했다. 하지만 최주환 오재일을 놓친 두산 베어스의 수호의지가 강력했다. 기간을 6년으로 늘려 정수빈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물론 제시 금액도 올랐다.
이례적인 FA 시장 활황세. 이면에는 '신흥 왕조' NC 다이노스 그림자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우선, FA 최대어 양의지 영입에 대한 학습효과가 있었다.
2019 시즌을 앞두고 NC는 역대 최고액인 125억 원을 베팅해 최고 포수 양의지를 잡았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2018년 꼴찌였던 성적이 단계별로 수직상승했다. 10위→5위→1위는 현실이었다.
푼돈을 찔끔찔끔 써서 흐지부지 없애버리는 것이 아닌 최고의 상품에 통 크게 투자하는 것이 최고의 효율이란 교훈을 남겼다. '성적 없는 리빌딩은 없다'는 진리와 '하위권 탈출의 열쇠는 거물 외부 FA 영입 뿐'이라는 사실도 새삼 확인시켜줬다.
NC의 두둑한 지갑도 잠재적 위협 요소였다.
코로나19 정국 속에서 오히려 매출을 더 크게 올린 모 기업을 둔 형편 좋은 구단.
첫 우승을 한 김에 왕조 구축을 꿈꾸는 '잠재적 큰 손' NC는 실질적 구매 구단에게는 두려운 존재였다.
NC가 언제든 참전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과감한 베팅'으로 이어졌다.
나성범의 메이저리그 진출 가능성, 양의지를 NC에 안긴 이예랑 리코스포츠에이전시 대표가 허경민 오재일과 같은 에이전트란 점도 몸값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로 최악으로 치달을 것 같았던 FA 시장의 반전 같았던 인플레이션. 과열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 흐름을 타고 대박 계약을 한 소수 선수와, 그렇지 못한 다수 선수 간 양극화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깊어질 겨울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