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저는 선수생활 내내 '조연'이었어요. 그래서 행복했고, 그래서 오래 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모두가 '주연'을 꿈꾼다. 주연에게는 환호와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다. 하지만 모두에게 주연이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화려하고, 달콤한 그 몇 안되는 자리를 얻기 위해 모두가 치열하게 싸운다. 그 과정에서 승리한 소수는 돈과 명예를 얻지만, 그렇지 못한 다수는 좌절하고, 상처받는다.
'최신기종' 배기종은 달랐다. 그는 '조연'을 숙명처럼 받아들였다. 주연을 꿈꾸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조연으로도 행복했다.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인정하며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그는 무려 15년 동안 K리거로 뛸 수 있었다. 배기종은 "스타가 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동경을 하지도 않았다. 신기할 정도로 스스로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욕심이 없었기에, 흘러가는 대로 뛸 수 있었고, 이렇게 오랜 기간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배기종은 최근 은퇴를 선언했다. 마무리도 '배기종'다웠다. 배기종은 "경남에서 나가서 1년 더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쯤이면 떠날 시기라고 생각했다. 이제 경쟁도 힘들고, 열정도 많이 떨어졌다"며 "은퇴해야겠다고 혼자 결정을 내렸다. 가족에게만 의견을 물었다. 그리고 스스로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아쉬움이 큰 마지막 시즌이었다. 2019년 특급 조커로 맹활약을 펼친 배기종은 '광운대 선배' 설기현 감독 부임 후에도 입지가 굳건했다. 하지만 시즌 초반 이후 갑자기 그라운드에서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설 감독이 젊은 선수들을 중용하며, 배기종은 설 자리를 잃었다. 2군에서 계속 준비를 하던 배기종은 끝내 기회를 잡지 못했다. '라이언킹' 이동국처럼 화려한 마무리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있다. 배기종은 "게임을 뛰지 못해서 속상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5년 동안 이 팀에서 보여준 게 있는데 1군 선수들과 함께 훈련도 하지 못한 것은 좀 아쉬웠다"며 "은퇴경기라도 했으면 하는 생각도 했는데, 확실히 박수칠 때 떠나는 게 힘든 일이구나 싶다"고 했다.
돌아보면 '기대 이상의 커리어'라고 했다. 배기종은 "연습생으로 시작해서 엄청 오래 했다. 복받은거다. 물론 과정도 중요하지만 오래 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대견하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서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는데, 시작부터 그랬지만, 내 능력에 비해 오래했다"고 했다. 배기종의 말대로, 시작은 미약했다. 연습생으로 가까스로 프로에 입성했다. 배기종은 "학창시절부터 무명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주전을 하기는 했지만 월등하지는 않았다. 내가 4학년 때 3학년 선수들이 이미 프로와 계약하는 것을 보고 슬럼프도 왔었다. 그냥 어디라도 가기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대전이 배기종에게 손을 내밀었다. 연습생 신분이었지만 최윤겸 감독의 눈에 들어 데뷔시즌부터 좋은 활약을 펼쳤다. 19경기에서 6골을 넣었다. '최신기종'이라는 별명도 이때 생겼다.
하지만 굴곡도 시작됐다. 이적을 두고 마찰이 일어났다. 당초 원했던 전남 드래곤즈가 아닌 수원 삼성으로 트레이드됐다. 대전팬들은 팀을 떠나려고 하는 배기종을 향해 야유를 보냈다. 배기종은 "그때는 마냥 좋은 팀에 가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팬들에게 너무 죄송하다. 처음에는 팬들이 야유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얼마나 팬들이 나를 사랑해주셨으면 그러셨을까' 싶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배기종은 수원 이적 후 한단계 도약에 성공했다. 우승도 맛봤고, 대표팀에도 발탁됐다. 이후 제주 유나이티드로 이적해 준우승에 일조했다. K리그 정상급 공격수로 자리매김했지만, 배기종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초심을 잃지 않았다. 배기종은 "예나 지금이나 나는 확실한 주전인 적이 없었다. 수원 시절 대표팀에 발탁도 됐지만, 솔직히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베스트도 아니고 매경기 엔트리에 포함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있었는데 대표팀에 갈지는 꿈에도 몰랐다"며 "나는 조커였다. 이에 대해 불만을 품은 적도 없다. 오히려 조커가 내 능력을 더 보여줄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스타일적으로 그랬다. 그래서 내 이름을 더 알릴 수 있었다"고 했다.
2016년 경남 이적, 그의 커리어에서 새로운 도전이었다. 배기종은 "20대 후반에 '34세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적이 있었다. 그때까지 하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34세 때 경남에 와서 5년이나 더 뛰었다"고 했다. 경남 시절은 배기종이 꼽는 '리즈 시절(전성기)'이었다. 배기종은 "2017년부터 주장 완장을 찼다. 그리고 계속 승승장구했다. K리그2 우승을 차지하고, 곧바로 다음 해 K리그1 준우승까지 차지했다. 경기력도 좋았고, 팀적으로도 좋았다"고 했다. 가슴 아픈 순간도 경남에서 겪었다. 경남은 준우승 다음 해 바로 강등됐다. 배기종은 특급조커로 맹활약을 펼쳤지만, 팀의 강등을 막지는 못했다. 배기종은 "이 모든 게 주장으로 있던 3년간 겪었던 일이다. 그래서 경남에 더 애착이 가는 것 같다"고 했다.
배기종은 인터뷰 내내 "운이 좋았다"고 했다. 그는 "신인 때부터 잘난 것도 없었는데, 팀에서 살아남고 경기도 나갔다. 좋은 지도자를 만나서 많은 것을 배웠고, 가는 팀 마다 성적도 냈다. 남들은 경험 못하는 우승도 두번이나 해봤고, 준우승도 두번 했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도 뛰었다. 운이 좋았다"고 했다. 운만으로 프로에서 15년간 살아남을 수 없다. 예민한 배기종은 자기 관리에 철저했고, 그래서 마지막까지 자신만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었다. 그런 배기종을 버티게 한 원동력은 역시 '가족'이었다. 배기종은 "결혼하고 계속 가족과 떨어져 있었다. 예민한 내가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준 부분, 그래서 가족, 특히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다.
배기종은 지도자 진로를 두고 고민 중이다. 그는 "선수생활을 하면서 많은 지도자를 만났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이 크다. 그래서 프로보다는 유소년 쪽을 생각하고 있는데, 일단 천천히 생각할 계획"이라고 했다. 지금은 육아에 전념하고 있다. 배기종은 "첫째가 여덟살, 둘째가 여섯살이다. 맨날 나가 있던 아빠가 집에 있으니까 많이 좋아한다. 확실히 육아가 어렵다. 그래도 당분간은 가족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웃었다. 인터뷰 마지막으로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고 물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배기종은 그다운 답변으로 마무리했다. "조연? 빛나지는 않았지만, 묵묵히 있었던 선수,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배기종이라는 선수가 있었구나 하고 오래 기억되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 너무 담백한가, 그럼 '화려한 조연'? 이건 좀 그런가. 하하." 조연이어도 행복했던, 배기종의 2막을 응원한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