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이 올해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연봉보다 더 많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난의 원인으로 꼽히는 전세 공급 문제는 내년까지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전세난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2일 KB국민은행 리브온의 월간 KB주택가격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5억6069만원으로 전달의 5억3677만원보다 2390만원 올랐다. 지난달 월간 전셋값 상승액은 KB국민은행이 이 통계를 공표하기 시작한 2011년 6월 이후 9년 5개월 동안 가장 크게 오른 것이다.
이는 올해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1년 동안 받는 연봉보다도 많은 액수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8590원, 월급으로는 179만5310원이다. 연봉으로 환산하면 2154만3720원인데, 이보다 많다.
전문가들은 세입자의 권리를 강화한 새 임대차법이 본격 도입된 8월 이후 제도 초기 부작용으로 전세 매물 잠김 현상이 심화하면서 이같은 전셋값 폭등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한다. 세입자 대부분이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기존 주택에 2년 더 눌러앉으며 시중에 나오는 전세 물건이 급감하고, 전월세상한제로 전셋값을 2년에 5% 이상 올리지 못하게 된 집주인들이 4년 치 보증금을 미리 올려받으려 하면서 전셋값이 급등하는 현상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이런 영향으로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8월 5억1011만원으로 처음 5억원을 돌파했고,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지난달까지 4개월 동안 6146만원이 오르는 등 급등했다.
KB 평균 전셋값 통계 작성 이후 월간 전셋값이 1000만원 이상 오른 것은 딱 4번이다. 지난 2016년 1월(1941만원)을 제외하면 나머지 3번은 모두 올해 8월(1089만원), 10월(1971만원), 11월 등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에 몰려 있다.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올해 들어 11월까지 8632만원 올랐는데,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8∼11월 4개월 동안 상승액이 전체 상승액의 71.2%인 6146만원에 달한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달 ㎡당 평균 28만4000원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3.3㎡(1평)당 평균 93만000천원 오른 셈이다.
㎡당 평균 전셋값을 국민주택 규모보다 조금 큰 전용면적 86.7㎡ 아파트에 적용하면 5억6068만원으로, 평균 전셋값과 같은 수준이 된다.
전용 86.7㎡ 아파트를 기준으로 보면 지난달 송파구 전셋값이 평균 4574만원 올라 서울에서 상승액이 가장 컸다. 이어 강남구가 평균 4270만원 올라 뒤를 이었고, 성동구(2910만원), 마포구(2760만원), 강동구(2727만원), 강서구(2719만원), 용산구(2542만원), 양천구(2480만원) 등 순이었다.
학군·교통 등의 이유로 인기 지역으로 꼽히는 강남 3구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 지역 등을 중심으로 전셋값 상승세가 거센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달 기준 서울에서 전셋값이 가장 비싼 지역은 강남구로, 86.7㎡짜리 전세 아파트를 얻는데 평균 9억4951만원이 필요했다. 서초구가 8억644만원으로 뒤를 이었다.
송파구에서 같은 평형 아파트를 전세로 얻으려면 6억7310만원이 들었고, 성동구는 6억4368만원, 중구는 6억3059만원, 광진구는 6억2808만원, 마포구는 6억1596만원, 용산구는 6억559만원이 필요했다.
반면 전셋값이 가장 저렴한 지역은 도봉구로, 86.7㎡ 아파트 기준으로 평균 3억6239만원이 필요했고, 금천구(3억7968만원), 노원구(3억8668만원), 중랑구(3억9539만원)가 4억원 미만이었다.
최근 전셋값은 수도권·지방을 가리지 않고 오르고 있다. 지방의 경우 전셋값 상승세는 새 임대차법 시행 이후 더 두드러진다.
경기의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지난달 3억166만원으로 전달보다 1545만원 오르며 조사 이후 처음으로 3억원을 넘겼다. 경기의 최근 4개월간 아파트 전셋값 상승액은 4097만원에 달하는데, 올해 11월까지 전체 상승액이 5631만원인 것과 비교하면 4개월간 전체의 72.6%에 해당하는 금액이 올랐다.
전국적으로 전세 불안이 지속되자 정부가 지난달 공급 확대를 기조로 전세 대책을 내놨지만, 민간 연구기관들은 내년에도 전셋값 상승이 계속될 것으로 우려한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은 내년 상반기까지 전세난이 지속되면서 전셋값이 전국적으로 4% 오르고, 수도권은 5%, 서울은 3% 각각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도 전세 물건 부족으로 내년 전셋값 상승률이 올해(4.4%)보다 더 확대된 5.0%에 이를 전망이라고 추산했다.
한 전문가는 "정부가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전세시장 불안 장기화는 당분간 불가피해 보인다"며 "내년 하반기 이후에 전셋값이 안정되면서 전세난이 진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제11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전세대책 후속 실행조치계획' 등을 발표했다.
홍 부총리는 최근의 전세 시장에 대해 "저금리, 가구·세대수 증가 등 기존 불안요인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지만, 4분기 수도권 입주물량이 평년 대비 증가하면서 전세매물이 조금씩 누적되는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며 "전세시장 안정을 조기에 도모하기 위해 12월까지 수도권 1만6000호, 서울 5000호를 포함 전국 3만9000호의 공실 공공임대의 입주자를 조속히 모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이정혁 기자 jjangg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