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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줄이는 삼성, 대한민국 스포츠의 근간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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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말 그대로 상전벽해다.

바뀌어도 이렇게 바뀔 수가 없다. 마치 순식간에 다른 채널로 돌아간 느낌.

스포츠에 대한 삼성의 관심, 이전과 이후다.

삼성은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의 근간이었다.

레슬링 등 비 인기종목에 대한 통 큰 투자로 올림픽 등 국제무대에서 국격을 한껏 높였다. 고 이건희 회장은 IOC 위원으로 맹활약했다. 평창올림픽 유치를 위해 불철주야 헌신했고, 눈부신 성과를 이뤄냈다. 삼수 끝 유치가 확정되는 순간, 이 회장 눈가에 살짝 맺힌 이슬은 감동적인 장면으로 기억된다.

1980년대 프로리그 탄생과 발전 과정에 있어서도 삼성은 근간이자 중심이었다.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의 제일주의가 프로 스포츠에 고스란히 투영됐다. 늘 '최고'를 지향했고, 그에 걸맞은 과감한 투자를 했다.

모든 종목에서 1등 삼성은 타 팀의 기준이 됐다. 최고의 팀 삼성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속에 동반성장의 발전을 맛봤다. 자연스레 전체 리그 수준이 올라갔다. 전형적인 선순환 속 상향평준화였다. 모든 분야에서 앞장서 판을 주도하는 일등기업 삼성다운 행보였다.

하지만 약 7년 전부터 변화가 감지됐다. 스포츠에서 삼성이 철수를 시작했다.

여전히 IOC의 톱 스폰서로 올림픽 지원을 이어가고 있지만, 비인기 종목에 대한 직접적 투자 규모는 눈에 띄게 줄고 있다.

2013년 30년간 함께 해온 레슬링에 대한 후원을 끊었다. 이후 20년 넘게 운영하던 테니스단과 럭비단도 해체했다. 2018년에는 21년간 도움을 준 빙상연맹에 대한 후원을 전격 중단했다. 한때 육상 빙상, 레슬링, 탁구, 승마, 배드민턴, 태권도 등 모두 7개 종목의 회장사를 맡았던 삼성은 현재 육상만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아마추어 종목 뿐 아니었다.

늘 1등을 추구했던 프로 스포츠단에도 관심을 끊었다. 그 상징적 조치가 프로구단들의 제일기획으로의 관리주체 이관이었다. 2014년 수원 삼성 축구단과 서울 삼성, 용인 삼성생명 등 남녀 프로농구단을 넘겼다. 이어 2015년 삼성화재 블루팡스 배구단과 독립 채산제로 운영되던 삼성 라이온즈 야구단까지 이관시켰다.

4대 프로스포츠단이 모두 제일기획으로 넘어간 셈.

명분은 있었다. 변화하는 시대 흐름에 발 맞춰 통합 마케팅을 통해 산업으로서의 스포츠 가치를 부각시켜 '수익 모델'을 추구하겠다는 혁신적 취지였다. 하지만 지난 5년 간 실현된 현실 결과는 전혀 달랐다.

자생할 수 있는 스포츠 마케팅 환경이 성숙하지 못한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에서 지원금 축소는 곧 빠른 쇠퇴를 의미했다. 가장 큰 인기를 모으는 라이온즈 야구단조차 100%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현실. 투자가 아닌 관리 주체인 제일기획의 관리 아닌 관리 속에 상황은 지금 이 순간도 악화일로다. 한창 때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어든 모 그룹 지원금으로는 혁신은 커녕 현상 유지도 쉽지 않았다.

무관심 속에 방치가 이어졌고, 프로스포츠단은 하나둘씩 현재의 성적도 미래의 희망도 사라진 이류 구단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구단 내부 구성원들도 '최고의 구단'이란 지향점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다보니 책임이 따르는 과감한 혁신보다 자리를 보전하는 현실안주의 보신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그 소용돌이 속에 급기야 한국 프로스포츠의 근간이 함께 흔들리고 있다.

삼성의 변화를 바라보는 체육계 시선은 차갑다. 국정농단 사태 속에 홍역을 치른 이후 스포츠 지원 전반에 대한 그룹 차원의 거리두기라는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승부가 있는 스포츠가 기업 이미지에 미치는 직·간접적 파급효과는 수치로 헤아리기 어렵다.

상징화된 기업 이미지는 스포츠단을 매개로 고객에게 널리 뿌려진다. 이미지 제고의 차원에서 첨예한 정치적 행위에 가깝다. 쉽게 포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올림픽 등 국제무대를 통해 형성되는 이미지 제고는 설명이 필요 없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등 기업 삼성의 무관심은 곧 대한민국 스포츠의 퇴보를 의미한다. 방치 속에 폐가가 된 스포츠단의 이미지는 그룹에도 부담이다.

더 이상의 방치는 곤란하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방향 전환에 대한 그룹 차원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