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최만식 기자] 고(故) 디에고 마라도나의 장례식은 끝났지만 여운은 끝날 기미가 없다.
마라도나에 대한 추모 열기가 세계 축구계에 끊이지 않는 가운데 '신의 손' 사건의 심판도 추모 대열에 합류했다.
영국 언론 BBC는 28일(한국시각) '전설의 신의 손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를 놓친 튀니지 출신 주심 알리 빈 나세르씨가 그 경기를 회상하며 역사적 경기에서 주심을 맡은 것을 영광스럽게 회고했다'고 보도했다.
세계 축구사에 영원히 남을 '신의 손' 사건은 1986년 멕시코월드컵 아르헨티나-잉글랜드 8강전에서 마라도나가 만들어 낸 신기의 골을 말한다. 당시 경기에서 0-0이던 후반 4분 마라도나는 머리로 헤더하는 것처럼 동작을 하면서 손으로 쳐 골을 기록했다.
요즘 세상이면 VAR이 있기 때문에 '골 취소'가 확실하지만 당시는 심판의 육안 판정에 의존했기 때문에 주심이던 빈 나세르 심판은 이를 보지 못했다. TV중계 리플레이 장면을 돌려보기 전에는 세계 축구팬들도 정상적인 헤더골인 줄 알았을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장면이었다. 그래서 '신의 손'이란 대명사가 붙었다.
마라도나는 당시 8강전에서 '신의 손'뿐 아니라 또다른 전설, '폭풍 드리블 골'도 남겼다. '신의 손' 골을 넣은 뒤 불과 4분 뒤 마라도나는 하프라인에서 폭풍같은 드리블과 개인기를 앞세워 골키퍼까지 모두 5명을 제친 뒤 골을 만들었다.
마라도나를 상징하는 2개의 전설 스토리가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그것도 같은 경기에서 모두 탄생한 것이다. 그 역사의 현장에 빈 나세르 심판이 휘슬을 잡고 있었다.
빈 나세르 심판은 신의 손 골에 대해 "마라도나는 피터 시루톤과 동시에 공중으로 뛰어 올랐다. 그들 2 명 모두 나와 반대쪽을 향하고 있었다"며 마라도나의 '손기술'을 볼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이후의 상황도 설명했다. 마라도나가 골망을 흔들었을 때 처음에는 골을 선언해야 할지 주저했다고 한다. 그래서 센터서클 쪽으로 돌아가 골 여부를 최종 확인하기 위해 부심의 신호를 살폈지만 부심이 핸드볼 신호를 보이지 않았다는 것. 결국 주심의 판단을 존중하면서 '신의 손'을 놓칠 수밖에 없었다.
빈 나세르 심판은 "경기 전에 국제축구연맹(FIFA)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내리고 있었다. '만약 동료 심판이 나보다 좋은 위치에 있었다면 그의 견해를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며 당시 판정 상황의 정당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더불어 빈 나세르 심판은 '폭풍 드리블'에 대한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마라도나는 중앙에서부터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고. 나는 바로 근처에서 그를 쫓아갔다. 마라도나 같은 선수가 쇄도할 때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잉글랜드 선수들이 마라도나를 3번에 걸쳐 넘어뜨리려고 했지만, 마라도나의 질주를 막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는 나는 마라도나가 페널티 박스에 도달할 때까지 '어드밴티지'를 여러차례 외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는 마라도나가 50m를 질주할 때 잉글랜드 수비수 중 누군가는 막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는 빈 나세르 심판은 "만약 '어드밴티지'가 아닌 파울 휘슬을 불었다면 그렇게 역사적인 장면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마라도나의 경기를 판정했다는 게 자랑스럽다. 그의 드리블은 상상을 훨씬 뛰어 넘는 것이었다"고 회상했다.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