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한국 축구 레전드 박지성(39)은 맨유에서 뛰던 시절 '언성 히어로'(소리 없는 영웅)란 애칭을 얻었다. K리그에서 그 애칭에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를 한 명 꼽자면, 이승기(32·전북 현대)가 아닐까 한다.
이승기는 지난 8일 울산 현대와의 FA컵 결승전 2차전에서 중거리 슛 두 방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영웅적인 활약을 펼친 뒤 "주인공은 아니다"라며 스스로 낮췄지만, 주변 동료들과 전북 프런트는 한 목소리로 "주인공"이라고 말한다.
이승기는 '바로우의 폭발적인 스피드, 구스타보의 압도적 피지컬, 쿠니모토의 볼 컨트롤, 이 용의 크로스'와 같은, 특별한 능력을 장착한 선수는 아니다. 그래서 경기를 볼 때 확 눈에 들어오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승기는 특징이 없다는 게 특징이다. 다양한 스킬을 고루 장착한 '육각형 미드필더'로 볼 수 있다. 90분 동안 쉬지 않고 그라운드를 누빌 수 있는 체력과 투쟁심은 덤이다.
그래서 이승기의 진가는 정작 이승기가 결장할 때 잘 드러난다. 전북에는 K리그1 MVP에 빛나는 손준호를 비롯해 김보경 쿠니모토 신형민과 같은 수준급 미드필더가 있지만, 이들로는 미드필드진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전북 모라이스 감독이 중요한 경기에서 이승기를 빼놓지 않는 이유다.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이 중요한 경기에서 박지성을 활용한 것과 비슷한 이치다. 대표적으로 올 시즌 울산과의 5차례 맞대결에서 이승기는 3경기에 나섰다. 기선제압이 중요한 리그 첫번째 현대가 더비(3대0 승), 뒤집기 여부가 달린 3번째 현대가 더비(1대0 승), 그리고 FA컵 우승을 확정한 FA컵 결승 2차전이다. 전북은 이승기가 출전한 3경기에서 모두 승리했고, 결과적으로 창단 처음으로 더블을 달성했다.
모라이스 감독은 울산전을 마치고 "이승기는 여러분이 아는 것보다 영리한 선수다. 공격진에서 비교적 주목을 덜 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둘을 가르치면 셋을 해낸다. 이승기를 지도하는 게 늘 즐겁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2013년 전북에 입단해 올해 7번째 시즌을 치르고 있는 이승기는 "그동안 내 실력이 부족해 주목받지 못한 것"이라며 "오늘은 (이)동국이형이 '네가 주인공'이라고 말해줘 기분 좋았다"며 웃었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