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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종합] "'꿈속 요정' 김혜수만으로 선택"…이정은, 無대사→'기생충' 후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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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꿈속의 요정' 같은 김혜수, '내가 죽던 날'을 선택한 이유죠. 하하."

미스터리 휴먼 영화 '내가 죽던 날'(박지완 감독, 오스카 10 스튜디오·스토리퐁 제작)에서 사고로 목소리를 잃은 섬마을 주민이자 소녀 세진(노정의)의 마지막 행적을 목격한 순천댁을 연기한 배우 이정은(50). 그가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스포츠조선과 만나 '내가 죽던 날'에 대한 비하인드 에피소드와 근황을 전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처와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용기와 위로를 건네는 '내가 죽던 날'. 삶의 이유를 찾아가는 인물의 내면을 세밀하게 포착하고, 사건 이면의 사람을 들여다본 '내가 죽던 날'은 삶의 벼랑 끝에 선 인물들의 보이지 않는 연대를 세밀하고 깊이 있게 담아내며 기존 장르 영화의 문법을 탈피한 섬세한 감성 드라마로 강렬한 울림과 여운을 남긴다.

여기에 '내가 죽던 날'은 충무로 대표 여배우로 존재감을 드러낸 김혜수와 칸국제영화제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사로잡은 이정은, '괴물 아역'으로 떠오른 노정의의 쫀쫀한 앙상블로 관객을 사로잡을 전망. 특히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특유의 친근한 매력과 싱크로율을 씹어 삼킨 캐릭터 소화력으로 관객을 울고 웃긴 이정은은 '내가 죽던 날'에서 목소리를 잃은 캐릭터에 도전, 다시 한번 인생 캐릭터를 경신했다. 극의 서스펜스를 이끄는 캐릭터 순천댁을 소화한 그는 목소리 없이 몸짓과 표정만으로 오롯이 감정을 전달하며 '믿고 보는 배우'의 저력을 과시했다.

이정은은 '내가 죽던 날'의 선택 이유에 "어쨌든 이 작품은 시나리오가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혜수가 한다는 게 작품을 선택하는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작품을 개발할 때 우연히 우리 소속사 옆에 제작사가 있었다. 이 팀이 이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는 걸 전해 들었고 나도 힘을 주고 싶었다. 투자를 받고 하는 문제가 좀 있었지만 과감하게 선택하려고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김혜수를 알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스타이지 않나? 그럼에도 나는 간혹 친숙한 자리에서 만나서 그의 모습을 지켜봤는데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 같더라. 같은 또래인데 기사를 보면 저 사람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틀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김혜수가 '내가 죽던 날'을 선택할 당시 힘든 지점을 통과한 사람의 얼굴이 있더라. 현장에서 배우로서 얼굴이 너무 좋았다. 너무 좋은 얼굴이 나왔고 현장에서도 혜수 씨에게 얼굴이 좋다고 말을 하기도 했다. 극찬해도 좋을 만큼, 팬들이 좋아할 만한 얼굴이 나왔다. 나는 다만 심리적으로 힘든 것은 없었지만 이 작업을 하는 동안 몸이 좀 바빴다"고 웃었다.

김혜수를 향한 남다른 애정을 쏟은 이정은. 그는 "내가 공연할 때 혜수 씨 지인이 연출하던 작품이었다. 그때 본인 의상을 많이 지원해줬다. 김혜수는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후광이 나지 않나? 나에겐 스타였다. 내가 그 옆에 서면 아이 같고 마치 여신 같은 사람이 쓰다듬어 주는 것 같다. 청룡영화상 같은 데서 보면 '꿈속의 요정' 같다. 지금도 그를 볼 때 신기하다"며 "김혜수는 정말 멋지다. 우리 연극을 도와준 것도 쉽지 않고 여기에 남을 추천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닌데 가정 형편이 어렵지만 재능 있는 젊은 배우들을 자신이 알고 있는 감독, 작품에 추천을 많이 해준다. 나 같은 경우는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를 나왔지만 선배들이 모든 작품에 추천할 수 없다. 지연, 학연 이런 게 없는데도 추천을 한다. 연대라는 게 그런 것 같다. 소위 사회에서 척도로 생각하는 학력, 연고 없이 친구가 될 수 있고 마음을 실어줄 수 있다는 것.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 같다. 다 똑같은 사람이지 않나. 그런 게 연대이지 않나. 싶다. 촬영하면서 힘이 많이 됐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번 작품은 이정은의 새로운 도전에도 많은 관심이 쏠렸다. '내가 죽던 날'에서 무(無)대사를 도전한 이정은은 "사실 촬영하는 동안은 부담이 많이 됐다. 우리 영화에 앞서 '소리도 없이'(홍의정 감독)에서도 유아인이 대사가 없는 연기를 도전했다고 들었다. 아직 작품을 못 봤는데 (유아인의 연기가) 굉장히 잘했을 것 같다. 유아인은 정말 획기적인 작품을 많이 하지 않나? 안 봐도 잘했을 것 같다"고 자신했다.

더불어 "나는 이 역할 골랐을 때 시나리오도 흥미로웠지만 무대사도 재미있을 것 같아 선택하게 됐다. 그동안 나는 언어를 사용해 캐릭터를 보이게 하는 연기를 많이 해왔는데 어느 날 문득 대사하는 연기가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로서 언어가 없는 연기를 하면 어떨까?' 싶었는데 그 결과가 관객에게 어떻게 보일지 모르지만 나름대로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나름대로 좋은 실험이었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이어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영화는 후시가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소리는 현장에서 채취된 것도 있고 후시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 것도 있다. 소리를 만드는 과정이 있었는데 이번 작품도 마지막에 후시 녹음의 힘을 빌렸다. 내 육성을 쓴 것인데 '어떻게 하면 절실한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싶어 후시 녹음을 시도했다. 기존에 영화에서 소리를 입혀본 작업이 많은 경험이 됐다. '옥자'에서 옥자 목소리, '미스터 주'에서는 고릴라 목소리를 녹음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녹음실에 들어가는 작업이 재미있어졌다. 늘 공을 들이면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기생충'(19, 봉중호 감독)으로 전 세계의 시선을 끈 이정은은 '기생충' 이후 달라진 위상에 대해서도 재치있게 털어놨다. 이정은은 "'기생충' 이후 '자산어보'(이준익 감독)를 먼저 찍었지만 개봉을 '내가 죽는 날'이 먼저 하게 됐다. 솔직히 '기생충' 이후에 찾아주는 분이 많아졌다. 근데 또 많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매니저와 늘 하는 말이 '실력도 없는데 거품만 많이 낀 것 아니냐?'라는 말을 했다. 물론 연기를 좋아하고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진다는 건 특혜이지만 그만큼 책임감도 많이 든다. 매번 열심히 하려고 한다"고 고백했다.

그는 "'기생충' 캐릭터가 너무 좋아서 감사하게도 광고도 많이 촬영했다. 송강호 선배가 최근에 '너 돈 많이 벌었겠다'라는 말을 하더라. '기생충' 이미지에서 파생된 광고가 많이 들어왔다. 아무래도 이런 캐릭터로 광고를 찍었다는 사실이 꽤 충격이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봉준호 감독에게 광고의 지분을 좀 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몇 % 떼드려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아직도 광고 수익을 거두고 있는데 봉준호 감독에게 맛있는 밥이라도 사야 할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해외 진출 제의도 많아졌다는 이정은은 "사실 할리우드 러브콜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멈췄다. 자연스럽게 중단이 됐다. 해외 작품을 하려면 현장에서 영어로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데 사실 나는 영어를 잘 못 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그런데 또 할리우드 진출을 생각했다가 요즘은 한국 콘텐츠가 더 좋아져서 굳이 할리우드에 가야 하나 싶기도 하다. 중국계 얼굴이라 중국에서도 활동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내가 죽던 날'은 유서 한 장만 남긴 채 절벽 끝으로 사라진 소녀와 삶의 벼랑 끝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내민 무언의 목격자까지 살아남기 위한 그들 각자의 선택을 그린 작품이다. 김혜수, 이정은, 노정의, 김선영, 이상엽, 문정희 등이 가세했고 박지완 감독의 첫 상업영화 데뷔작이다. 오는 12일 개봉한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