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그렇게 힘 있는 사람이었나요? 하하."
KOC 분리 논쟁,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의 방한 불발, 내년 대한체육회장 선거 등을 둘러싸고 갖은 설들이 난무하는 체육계, '카더라'의 끝엔 어김없이 '안민석'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따라나온다. "문체부 스포츠혁신위와 KOC 분리 뒤엔 안민석 의원(더불어민주당) 이 있다" "안민석 의원이 대한체육회장 후보로 특정인을 밀고 있다"는 식이다.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920호에서 마주한 안 의원에게 '팩트체크'를 하자마자 "제가 그렇게 힘 있는 사람이었나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나는 평생 체육개혁을 위해 헌신한 사람이다. 1970~1980년대 성적지상주의 논리로 스포츠 기득권을 지켜야 하는 사람, 기득권에 공생하는 언론인, 학자, 체육인 등등 혁신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퍼뜨린다. 10년 전 학교체육진흥법을 반대했던 사람들이 똑같이 스포츠 혁신을 반대하고 있다.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인 안민석을 공격해 혁신을 저지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2032년 서울-평양공동올림픽, 2045년 남북통일의 비전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82학번, 중앙대 사회체육학과 교수, 스포츠 사회학자 출신 안 의원은 지역구 경기도 오산시에서 5선 의원으로 21대 국회에 재입성했다. 19대 국회에선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의 통합을 이끌었고, 20대 국회에선 문화체육관광위원장으로 일했으며, 21대 국회에선 외교통상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다.
"체육에 관심이 많으신데 왜 외통위로 가셨느냐"는 질문에 안 의원은 "2032년 남북공동올림픽 때문"이라고 즉답했다. "2032 서울-평양 공동올림픽 아이디어는 내가 낸 것이다. 남북공동올림픽의 전제는 비핵화다. 비핵화를 통해 한반도 평화가 이뤄진다면, 유치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단언했다. "첫째, 남북 정상이 합의한 내용이다. 둘째,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의지를 갖고 보름 전쯤 바흐 위원장과도 만났다. 삼성은 2028년까지 IOC에 1조5000억원을 후원하는 톱 스폰서다. 셋째, 분단국 한반도의 평화와 화합은 올림픽정신과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안 의원은 "바흐 위원장도 남북공동올림픽의 취지에 공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올림픽을 열게 되면 바흐 위원장이 평화특사 자격으로 남북을 오가며 노벨평화상 후보 반열에 올라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안 의원은 스포츠를 통한 남북통일의 청사진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내년부터 남북이 공동유치 활동을 시작하면, 2022~2023년 유치 결정이 날 수 있다. 내년 외통위원들을 중심으로 서울-평양공동올림픽 촉구 결의안을 추진할 것이다. 2032년 올림픽을 통해 남북의 정신적, 문화적 통일이 이뤄지고 해방 100년 되는 2045년 정치적 통일이 이뤄질 것이다. 문체부, 외교부, 통일부 장관과 이 로드맵을 공유했다."
▶KOC 분리 거부는 플라자 합의 어긴 '먹튀'
최근 체육계에 가장 뜨거운 이슈인 KOC 분리 이야기가 나오자 안 의원은 테이블 한켠에서 2014년 11월 6일 '플라자호텔 합의문'을 꺼내보였다. 당시 김 종 문체부 차관, 김정행 대한체육회장, 서상기 국민생활체육회장, 안 의원이 양 체육회 통합에 합의하고 서명한 내용이다. 'KOC 분리 여부는 19대 국회에서 지속적으로 논의한다'는 별도의 조항이 불씨를 남겼다. 19, 20대를 지나 21대 국회까지 첨예한 쟁점이다. '그때 왜 KOC 분리까지 한꺼번에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안 의원은 "당시에도 정부는 KOC 분리를 원했는데, 대한체육회의 반발이 심했다. 통합 자체가 합의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종의 양보와 타협, 순차적 통합을 모색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안 의원은 "평창올림픽이 끝난 후 KOC를 분리하자는 이면합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KOC 분리를 못하겠다는 것은 생활체육회만 삼키고 '먹튀'하는 것이다. 평창올림픽 후 진정성 있는 자세로 약속을 지켜야 하는데, 스포츠맨십에도 맞지 않는다"고 했다. "물론 분리가 절대적인 선이라고 보진 않는다. 하지만 대한체육회가 분리를 결사항쟁하면서 반대하는 것은 약속을 깨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KOC가 분리될 경우 가장 큰 쟁점은 예산, 인력이 수반되는 '업무 분장'이다. 즉, 올림픽에 나설 엘리트 선수 발굴 및 육성 시스템을 대한체육회와 KOC 중 어디서 담당하느냐의 문제다. 안 의원은 "KOC는 스포츠 외교 에 전념해야 한다. 우리나라에 스포츠 외교 전문가가 있는가. 전문가를 길러내는 시스템이 없다. 일본올림픽위원회(JOC)만 해도 40명의 스포츠 외교 전문가들이 있다. 대한체육회 국제체육과는 순환보직이다. 구조적으로 전문가가 나올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엘리트 양성은 대한체육회가 하고, KOC는 대한체육회가 양성한 선수를 KOC는 파견하는 것이다. 국제적 업무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안 의원은 "문체부가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에게 두 달 전 '정부의 방침은 KOC 분리니 분리 후 이 회장이 KOC위원장을 하고 대한체육회 회장은 선출하자'고 제안했으나 이 회장이 거부했다. 그 후 IOC에서 KOC 분리를 우려하는 레터가 왔다. IOC 공문 기획에 대해 청와대도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한체육회는 필요할 때는 정부 간섭으로부터 독립적인 NOC이고 예산 받을 때는 대한체육회다. 4000억원 정부 예산을 받는 한 관리감독도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체육정책, 스포츠 혁신에 대한 평가
안 의원은 "빙상계 성폭력 의혹 사건, 고 최숙현 사건 등은 인권을 중시하는 문재인 정부로서는 정말 뼈아픈 일"이라고 돌아봤다. "20세기는 인권보다 메달이 우선적인 가치였지만 21세기는 메달보다 인권이 소중한 가치다. 대통령께서도 메달보다 인권이 우선인 시대라는 말씀을 여러 차례 하셨다. 이것이 스포츠 시대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안 의원은 "문체부 산하 스포츠혁신위가 내놓은 8차례 권고안은 이 시대정신을 담아낸 스포츠 혁신의 바이블이다. 스포츠 인권과 학습권이 핵심가치"라면서 "이 혁신안에 반대하는 것은 메달을 위해 반인권과 폭력을 용인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 의원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측근 인사설로 논란이 된 문경란 스포츠혁신위원장의 영입 과정도 소상히 설명했다. "조국 찬스로 낙하산 임명됐다는 것은 가짜뉴스다. 동료 언론인이 추천을 했고, 본인은 고사했는데 도종환 당시 문체부 장관이 삼고초려 끝에 모신 인권 전문가"라고 주장했다.
안 의원은 "이제 선수들 스스로 훈련하고 공부하면서 운동하면서 대학도 가고, 미국 일본처럼 의사, 변호사가 나올 수 있는 스포츠 선진국이 돼야 한다. 당장은 힘들어도 일단 시작은 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2010년부터 추구해온 '공부하는 선수' 정책과 학습권이 현장에 정착되는 데는 역설적이게도 정유라가 큰 기여를 했다. 중고,대학교에서 학생선수들의 학사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있다. 정유라가 개혁을 10년 앞당겼다"고 평가했다.
▶차기 대한체육회장은 스포츠 혁신 주도, 정부와 소통할 수 있는 이
내년 1월 18일 제41대 대한체육회장 선거를 앞두고 이기흥 회장이 재선을 노리는 가운데 강신욱 단국대 교수, 장영달 전 의원. 조재기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유준상, 이동섭, 문대성 전 의원 등의 출마설이 무성하다. 이중 한 후보는 안 의원이 미는 후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안 의원은 "특정인을 지지하지 않는다. 스포츠 혁신의 뜻을 함께하는 분이라면 누구든 지지한다"며 선을 그었다.
"이번 선거는 혁신과 반혁신의 총성없는 전쟁이 될 것"이라고 규정한 안 의원은 자신이 생각하는 차기 대한체육회장의 조건을 언급했다. "첫째, 스포츠 혁신을 통해 스포츠 선진국을 이룰 분, 둘째, 정부와 잘 협력하고 소통해 체육발전 이룰 분이어야 한다. 체육회는 정부의 정책을 따라야 하고 정부와 한몸처럼 움직여야 한다. 대한체육회는 시민단체가 아니라, 연예산 4000억을 정부 지원에 의존해 운영하는 정부산하 단체다. 지금처럼 체육회가 정부와 갈등 관계인 적은 유사 이래 처음이다. 대한체육회가 정부에 반기를 드는 것은 국가 기강의 문제다. 지금같은 혼란과 무질서를 원하는 체육인들은 없다. 정부와 관계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셋째, 통합체육회의 취지를 잘 이해해 학교-생활-엘리트 체육 상생발전을 이룰 분이어야 한다. 든든한 풀뿌리 체육의 토대 위에 엘리트 체육을 꽃피워야 한다. 넷째, 대한체육회와 지방체육회의 수직적 상명하복 관계가 아닌 수평적이고 협력적 관계를 실천할 분이어야 한다. 내가 21대 국회에서 최우선으로 대표발의한 '지방체육법인화법'이 이번 정기 국회 통과되면 지방체육의 재정적 안정이 가능해질 것이고, 체육의 중심축이 중앙에서 지방으로 이동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체육청? 그 이상의 '체육부'가 필요하다
학교체육에 각별한 애정을 지닌 안 의원은 코로나 시대 교육부, 문체부 등 정부에 체육전문가가 부족하고, 스포츠의 가치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체육 전문 거버넌스인 '체육청'의 필요성을 묻자 안 의원은 "체육청으로는 안된다. 국민건강시대와 남북공동올림픽을 위해 그보다 격상된 '체육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차기 대선때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공약으로 제안하여 관철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1988 서울올림픽을 위해 체육부를 만든 전례가 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체육청으로는 시대적 요구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고 봤다. "체육부는 교육부의 학교체육 업무를 포함해 생활체육, 엘리트체육 전반을 체육부가 관장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현행 학교체육을 교육부가, 생활-엘리트체육은 문체부가 하는 단절된 행정체계는 비효율적이다. 체육부를 통해 체육인재들을 적극 등용하고 활용하는 한편 지도자들의 신분 안정 문제도 해결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긴 인터뷰의 끝, 안 의원은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당부가 있다고 했다. "대한체육회를 비롯해 체육단체를 체육인에게 돌려줘야 한다. 각 종목 회장을 체육인들이 맡는 시대가 돼야 한다"고 했다."협회장으로 활동했던 주원홍 감독(테니스), 방 열 감독(농구), 유승민 IOC위원(탁구) 등이 좋은 모델이다. 체육인 중에서 적임자가 나오도록 체육인 스스로 공감대를 형성했으면 좋겠다. 부족하더라도 체육단체는 체육인들이 맡아야 하고 기업인, 정치인들은 도와주는 역할이 바람직하다. 체육단체는 체육인에게, 체육계의 '파사현정(사악함을 깨고 바른 도리를 드러냄)을 기대한다." 여의도=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