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잊을 만 하면 한번씩 불거지는 사인 훔치기 논란.
14일 대구 라이온즈파크에서 벌어졌다. 삼성-SK의 시즌 14차전. 1-1로 팽팽하던 5회말 삼성 공격이 끝나는 순간, 작은 소동이 있었다.
1루 코치 박스에 있던 강명구 코치는 이닝 종료 후 격앙된 표정으로 1루측 SK 덕아웃으로 향했다. "뭐?" 라고 항의하며 다가서는 강 코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SK 덕아웃 근처까지 다가오자 삼성 최태원 수석코치가 급히 나와 막아섰다. 박경완 감독대행과 조동화 코치 등 SK 코칭스태프가 덕아웃 밖으로 나와 강 코치를 만류했다. 최경철 코치를 향해 삿대질까지 하며 격앙된 모습이던 강명구 코치는 만류 속에 SK 벤치쪽 돌아보며 "내가 타자들 한테 알려줬어?"라고 소리 쳤다.
평소 온순한 지도자. 왜 이렇게 흥분을 했을까. 상황을 재구성 해보자.
5회말 1사 1,3루. 1루주자 박계범이 김상수 타석 때 박계범이 2루 도루를 성공시켰다. 2구째 슬라이더 타이밍을 정확히 포착해 스타트를 끊었다. 투수 김세현이 중간에 커트할 정도로 빠른 스타트였다.
1회 박해민 도루에 이은 또 한번의 도루 성공. SK 벤치가 예민해졌다.
강명구 코치와 1980년생 동갑내기 친구 사이인 최경철 코치가 "포수 사인을 보고 가르쳐 주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이 한마디가 강명구 코치를 자극했다.
최 코치와의 설전이 벌어진 배경이다.
주루 전문가 강명구 코치의 정확한 변화구 도루 타이밍 포착이 만들어낸 오해로 빚어진 해프닝이었다.
결국 강 코치가 SK측 덕아웃을 찾아 박경완 감독대행에게 사과하면서 사건은 일단락 됐다.
야구는 상대를 속이는 제로섬 게임이다. 상대 예측을 역으로 이용해야 승리 확률이 높아진다.
투수와 타자의 대결을 물론, 배터리와 주자의 신경전도 치열하다. 오죽하면 '훔친다'는 뜻의 스틸이 도루가 됐을까.
속고 속이는 야구의 속성을 생각하면 암묵적 신사협정은 언제든 위협받을 수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휴스턴의 포스트시즌 사인훔치기가 여전히 큰 앙금으로 남아 감정적 여파를 미치고 있는 상황.
무엇보다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없는 게 야구다. 사인을 둘러싼 신경전은 언제든 불거질 수 있다.
현역 시절 부터 투수 폼과 볼카운트 상황 등 도루타이밍 포착에 탁월한 노하우를 보유한 강명구 코치. 친구 코치의 사인훔치기 오해에 화가 났을 수 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런 논란 자체가 어쩌면 야구의 속성에서 나온 숙명 같은 것일 지도 모른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