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KBO리그에는 '용규놀이'라는 말이 있다. 볼은 지켜보고, 스트라이크존 근처의 공은 커트해내며 투수의 투구수를 늘리는 타자들의 행동을 가리킨다. 이용규(한화 이글스) 이후 리드오프의 미덕으로 자리잡았다.
무작정 파울을 많이 친다고 '용규놀이'가 아니다. 뛰어난 선구안은 필수다. 여기에 절묘한 타격 기술, 끈질긴 인내심을 두루 갖춘 선수만 가능하다.
'잘못 걸린' 투수는 평정심과 체력이 한꺼번에 무너지기도 한다. 투수에게 투구수는 중요한 '자원'이다. 일반적으로 선발투수의 투구수는 100개 안팎, 주요 불펜투수는 30~40개 정도다. 그런데 10개 이상의 투구수를 투자한 타자가 기어코 볼넷이나 안타로 출루할 경우 투수는 체력적·심리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올시즌 상대 투수를 가장 피곤하게 만드는 타자는 KT 위즈 조용호다. 지난 19일까지 조용호의 타석당 평균 투구수는 무려 4.57개. KBO리그 독보적 1위다. 전성기 이용규에 비해 선구안은 다소 미흡하다는 평. 하지만 적극적으로 파울을 만들어내는 능력만큼은 뒤지지 않는다. 좋은 외야수가 풍부한 KT에서도 외야 한 자리를 꿰찼다. 지난해(211타석)보다 이미 140타석 이상 더 출전했지만, 타율 2할9푼7리 출루율 3할9푼으로 전반적인 기록이 더 상승했다.
이 부문 2위는 4.37개의 LG 트윈스 홍창기다. 홍창기는 이른바 '용규놀이'에선 조용호나 이용규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한층 더 뛰어난 선구안의 소유자다. 지켜보고 골라낸다. 타석당 투구수에서는 조용호에 뒤지지만, 타석당 볼넷수에서는 0.16개로 전체 1위다. 이용규나 조용호(0.13개, 공동 7위)보다 훨씬 높다. 박석민이나 제이미 로맥, 김재환, 최정, 프레스턴 터커와 달리 거포가 아님에도 기록한 놀라운 수치다.
'원조' 이용규(4.33개)의 배트 끝도 아직 살아있다. 다만 이용규는 지난 17일 입은 부상으로 의료진으로부터 4주 진단을 받았다. 남은 시즌 출전이 가능할지 미지수다.
롯데 자이언츠 정훈(4.30개), 두산 베어스 최주환, 삼성 라이온즈 김상수(이상 4.23개) 등이 이들 뒤를 따르고 있다. 대체로 베테랑 거포들의 이름이 가득한 가운데, KT 심우준(4,07개, 10위) 키움 김혜성(4.00개 공동 13위)도 눈에 띈다.
광주=김영록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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