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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하늘에서 보셨죠?" '쌍용더비 신스틸러' 정훈성의 마수걸이골[애프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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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가 보셨으면 정말 좋아하셨을 텐데…."

지난 30일 뜨거웠던 '쌍용더비', 울산 이청용과 서울 기성용의 맞대결 열기속에 가려졌지만, 이날 기억해야할 '신스틸러'는 단연 정훈성이었다.

후반 45분, 이청용 대신 투입된 정훈성은 후반 추가시간 서울의 세트피스가 불발된 직후 상대 골대를 위해 질풍처럼 내달렸다. 하프라인을 훌쩍 넘어, 몸을 던진 서울 수비를 제치고 왼발로 골망을 갈랐다. 2-0, 안방 승리가 확정적인 상황에서 터진 울산의 세 번째 골, 정훈성이 올시즌 울산 입성 후 3경기만에 터뜨린 마수걸이 골이었다. 정훈성이 유니폼 상의를 살짝 내려 가슴에 새긴 타투를 드러냈다. 손자의 축구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하늘의 할아버지를 향한 벅찬 세리머니였다. 박주호 신진호 등 선배들이 자신의 골인양 정훈성의 골을 기뻐했다. 울산 이적후 첫 골, 화려한 '쌍용더비'에 가려졌지만 누군가에겐 평생 잊지 못할 인생골. '신스틸러' 정훈성의 시선으로 이날의 경기를 복기했다.

▶'신스틸러' 정훈성의 잊지 못할 5분

90분이 거의 다 흘러갈 무렵 사이드라인에서 마음을 비운 채 몸을 풀고 있었다. 계속 교체명단에 들었지만 한번도 부름 받지 못했다. 그래도 팀이 이겨 그저 감사하다 생각하던 그 순간 "훈성아!" 부르는 목소리에 귀가 번쩍 띄였다. '쌍용더비'의 주인공 청용이형과 교체됐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5분 남짓, 제발 팀에 피해만 주지 말자.' 서울의 마지막 세트피스가 불발된 후 내 발앞에 원샷원킬의 기회가 왔다. '역습이다!' 볼을 탈취한 채 숨이 턱에 닿게 달리고 또 달렸다. 매주 훈련해온 3대2 역습 상황이 떠올랐다. '골무원' 주니오도 어느새 박스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에이 모르겠다! 직접 슈팅, 욕심 한번 부려보자.' 자신 있는 왼발, 골망이 출렁였다. 근데 '어, VAR은 왜하지? 지난번 강원전때처럼 골 취소되면 안되는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행히 골이었다. 울산 이적 후 첫골, 벤치에서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는 김도훈 감독님이 보인다. "감독님, 코치님, 기회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벤치에서 남몰래 기회를 기다리면서, 마음에 품었던 세리머니가 있었다. 왼쪽 가슴팍에 새긴 돌아가신 할아버지(베드로)와 할머니(데레사)의 세례명 문신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2017년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소원은 언젠가 프로무대에서 뛰는 손자의 모습을 보는 거였다. K리그1 선두 울산에서 골을 넣은 지금 내 모습을 보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할아버지, 하늘에서 보고 계시죠?'

▶울산 마수걸이골 그 다음 꿈

경기 후 '룸메이트' (김)인성이형이 가장 먼저 휴대폰 메신저로 축하인사를 전해왔다. 인성이형과는 성균관대, 안양 출신, 강릉시청, 7번, 옛 여자친구의 이름까지 똑같다. 완전 신기하다. 플레이스타일도 비슷하다고들 한다. 형은 제발 그만 좀 얽히자고 한다. 물론 형이 나보다 훨씬 잘하신다. 정말 닮고 싶은 형, 늘 배우고 싶은 형이다.

1994년생, 축구선수로서 스물 여섯은 적은 나이도 많은 나이도 아니다. 평탄하게 프로 무대에 입성한 또래에 비해 사연도 있는 편이라고 한다. 대학 중퇴 후 J리그2에서 뛰다 '5년룰(K리그를 거치지 않고 해외구단과 첫 프로계약을 맺을 경우 5년 동안 K리그 팀과 계약 금지)' 때문에 내셔널리그(강릉시청, 목포시청)에서 뛰었다. 지난해 K리그1 인천에서 뛰었고, 올해 꿈처럼 울산에 오게 됐다. 사람들은 '힘들었겠다'고 하는데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내셔널리그에서 경기경험을 쌓았고 그 덕분에 울산에도 올 수 있게 됐다. 단계를 밟아 프로에 온 건 정말 잘된 일이다.

이제 나의 다음 꿈은 (형들이 놀릴 것 같지만) '대표팀'이다. '대표팀 호랑이' 옆에 내 이름이 뜨는 것, 태극마크를 달아보는 것이 꿈이다. 올시즌 목표는 팀 우승과 2골이다. 이제 한 골 넣었으니 이제 또 한 골이 남았다.

선수니까 벤치에서의 기다림은 당연히 힘들지만 화나는 건 전혀 없다. 멋없는 말처럼 들릴지 몰라도 우리팀엔 나보다 잘하는 선수들이 많다. 어린 (이)동경이도, (원)두재도 너무 잘하고, 형들도 뛰어나다. 누가 들어가도 잘하고 있다. 축구선수로서 살아있음을 못느끼는 게 조금 아쉽지만… 하지만 서울전처럼 어느날 문득 다가올 순간을 위해 나는 언제나 준비돼 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