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 두산 베어스 김태형 감독이 올해처럼 마운드 운영에 어려움을 겪은 시즌도 없다.
외인 투수 크리스 플렉센은 부상에 신음 중이고, 이용찬은 팔꿈치 수술을 받고 시즌을 접었다. 또한 상위 5개팀 가운데 고정된 마무리 투수가 없는 팀은 두산이 유일하다. 그러나 31일 현재 두산의 팀 평균자책점 4.72로 4번째로 좋고, 전체 평균 4.80보다 낮다. 이는 8월 들어 투수들이 악전고투해준 덕분이다.
두산은 8월 25경기에서 12승10패를 올리는 동안 팀 평균자책점 3.85를 기록했다. 7월 말까지 5점대였던 수치를 4점대로 끌어내린 것이다. 김태형 감독도 투수들의 수고를 누구보다도 인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마운드를 꾸리다 보면 한계에 부딪히고 투수들의 불만이 쌓일 수 밖에 없다. 이건 어느 팀이나 마찬가지다. 의기소침해진 투수를 다독여주는 것 역시 감독이 할 일이다.
김 감독은 최근 마운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투수 둘의 보직을 맞바꿨다. 마무리 함덕주를 선발로 돌리고, 각광받던 선발투수 이영하에게 뒷문을 맡기기로 했다. 주목할 것은 이 결정이 감독의 독단적 결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 감독이 둘의 의사를 반영해 취한 조치다.
김 감독은 "투수는 상대와 싸워야 하는데 본인 마음이 안 잡히면 제대로 던질 수 있겠나. 덕주와 영하를 서로 (보직을)바꾼 건 그 때문"이라고 밝혔다. 함덕주는 마무리 자리에서, 이영하는 선발 자리에서 각각 나름의 불편함을 안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실제 두 투수는 올시즌 내내 둘쭉날쭉했다. 함덕주는 7월말까지 잘 버텨오다 지난 7월 31일 NC 다이노스전에서 이틀 연속 블론세이브를 범하면서 엔트리에서 빠졌다. 팔꿈치 통증이 좀처럼 가시지 않은 때문이지만, 구위와 함께 마음을 가다듬지 못한 탓도 있다.
지난해 17승을 거두며 정상급 선발투수로 떠오른 이영하는 올시즌 전혀 다른 행보를 보여왔다. 3승8패, 평균자책점 5.47에서 나타나듯 선발을 믿고 맡기기 힘든 지경까지 왔다.
감독은 보통 선수들의 불만이나 요구사항을 투수코치를 통해 전해듣는다. 김 감독도 김원형 투수코치로부터 함덕주와 이영하의 마음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김 감독이 전혀 '감'도 없이 선수들의 상태를 묻는 건 아니었다. 김 감독은 "내가 직접 물을 수는 없고, 또 나도 눈치를 채고 있는데 그냥 넘길 수는 없다"면서 "감독이 (보직을 결정할 때)독재자도 아니고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보통 투수코치를 통해 듣는다. 덕주와 영하는 바꿔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영하는 지난 30일 서스펜디드 게임으로 열린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마무리 투수로 첫 선을 보였다. 5-5이던 9회말에 등판헤 세 타자를 가볍게 요리하고 경기를 끝마쳤다. 직구 구속은 151㎞까지 나왔고, 버릴 공이 한도 없을 정도로 제구도 완벽했다. 함덕주는 현재 2군서 선발수업을 받고 있다. 이번 주중 로테이션 합류가 예정돼 있다.
김 감독은 "영하는 본인이 3이닝 세이브도 가능하다고 하더라"며 웃은 뒤 "영하는 힘이 있지만, 아직 선발로서 6이닝을 차분하게 헤쳐나가는 것은 부족하다. 원래 뒤에서 던지고 싶어했다. 올해 계속 난조가 이어지다 보니 본인도 생각이 많아졌을 것"이라고 했다.
함덕주에 대해서는 "3년전에 선발을 했었다. 그런데 손가락에 물집이 자꾸 생기고 긴 이닝을 못 던지고 해서 뒤로 온 것"이라고 했다.
뜻대로 보직을 부여받은 이영하와 함덕주가 남은 시즌 김 감독의 기대를 충족해 줄 지 지켜볼 일이다. 잠실=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