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상태가 어떨지 모르지만 '쌍용더비'에 당연히 출전하고 싶다. (이청용을) 적으로 만나면 기분이 묘할 것 같다."
지난달 22일, 기성용은 FC서울 유니폼을 다시 입던 날, '절친' 이청용(울산 현대)과의 K리그 맞대결 '쌍용더비'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입단식 첫날부터 '쌍용더비'는 핫이슈였다. '나중에 꼭 K리그에서 함께 마무리하자'고 약조했던 친구 이청용이 지난 3월 한발 앞서 울산 유니폼을 입었다. 첫 프로팀 FC서울 유스로 축구의 꿈을 키우고, '쌍용'이라는 애칭으로 동고동락하며, 2009년 유럽 진출의 꿈을 함께 이룬 후, 지난 10년간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을 이끌었던 '30줄의 베테랑' 절친이 K리그 무대에서 다시 만나 써내려갈 스토리에 팬들이 열광했다.
그리고 한 달여 후, 마침내 그날이 도래했다. 이청용의 울산과 기성용의 서울이 30일 오후 5시30분 울산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질 '하나원큐 K리그1 2020' 18라운드에서 격돌한다.
▶울산 이청용 VS 서울 기성용, '드디어 쌍용더비'
이청용은 지난 3월 독일 보훔에서 울산으로 이적한 후 전천후 '축구도사'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올 시즌 14경기에서 동해안더비 포항전 2골을 포함해 3골 1도움을 기록중이다. 한번 잡은 공은 절대 내주지 않는 절대적인 클래스, 측면과 중앙, 위 아래를 쉴새없이 오가며 울산의 공격 축구를 이끌고 있다. 김도훈 울산 감독은 27일 울산-서울전 미디어데이 기자회견에 이청용을 거침없이 내세웠다.
이튿날인 28일 FC서울이 화답했다. "18라운드 울산 현대와 원정 경기 엔트리에 기성용을 포함했다"고 밝혔다. 지난 7월 여름 이적시장에서 뒤늦게 팀에 합류한 기성용은 아직 K리그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코로나19로 개막이 연기되면서 충분한 훈련기간과 실전을 통해 울산에 완벽 적응한 이청용과는 상황이 다르다. 발목 재활을 마치고, 팀 훈련에 합류해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과정이었다. 이번 경기에 출전할 경우, 2009년 11월 21일 전남 드래곤즈전 이후 3935일만의 K리그 복귀전이 된다.
▶2008년 쌍용파워, 2020년에도 현재진행형
이청용의 출전이 유력한 가운데 만약 기성용이 출전할 경우 K리그 첫 쌍용더비가 성사된다. 이청용도 친정 서울과의 첫 맞대결이다. 지난 6월 20일 서울 원정(2대0승) 때는 부상으로 명단에서 빠졌다. 이청용과 기성용은 2015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각각 크리스털 팰리스와 스완지 시티 소속으로 맞대결을 펼쳤다. 이후 5년만에 K리그 그라운드에서 맞대결을 눈앞에 뒀다.
친정 서울전을 앞두고 이청용은 "현재 우리 울산(승점 42)과 2위 전북(승점 41)이 승점 1점 차인 만큼 한경기 한경기가 중요하다. 특히 서울은 처음으로 프로생활을 시작한 곳이기 때문에 제겐 남다른 경기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서울을 '상대'로 뛰는 걸 상상해본 적이 없는데, 이번 주말에 해야 한다면 뜻깊을 것 같다"며 미소 지었다.
'선두' 울산은 서울에 강하다. 2018년 이후 패한 기억이 없다. 2018년 4월 14일 1대0 승리 이후 올해 6월 20일 2대0 승리까지, 8경기에서 6승2무다. 특히 15년만의 우승에 도전하는 올 시즌엔 17경기 20골을 기록중인 '득점왕' 주니오를 중심으로 어느 포지션 하나 빠지지 않는 막강 화력을 자랑한다. 서울은 김호영 감독대행 체제에서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4경기 무패(3승1무)를 달리며 어느새 6위로 올라섰다.
'쌍용더비' 성사 여부에 대한 팬들의 관심에 이청용은 "(기)성용이의 몸 상태가 100%는 아닌 것 같아서 이번주 만날지는 모르겠다. 팬들의 기다림을 알지만 너무 조급해하진 않으셨으면 좋겠다. 특히 이번주까지는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필 왜 이번주까지냐'는 돌직구 질문에 이청용은 "성용이가 뛰게 되면 경기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솔직히 만나고 싶지 않다. (울산전 말고)앞으로 다가올 경기에서 건강하게 뛰었으면 좋겠다"면서 싱긋 웃었다.
이청용이 5년전 EPL 맞대결을 떠올렸다. "영국에 있을 때 한번 맞대결을 한 적이 있다. 만약 이번에 맞대결을 펼치게 된다면 경기를 하는 동안 우정은 잠시 접어두고 팀 승리를 위해서만 집중하겠다"며 눈을 빛냈다.
'K리그 레전드' 김도훈 감독은 '쌍용더비'의 가치에 대해 "K리그 팬들을 위해서 이런 매치가 계속 이뤄져야 한다. 기성용 선수가 완전한 몸 상태가 아니라고 들었지만, 기성용 선수와의 '쌍용더비'가 이뤄질 수 있길 기대한다. K리그 팬들에게 어떤 면에선 동해안더비보다 중요한 경기"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2008년 FC서울을 이끌었던 '무서운 10대' 이청용과 기성용이 '30대 베테랑'이 돼 K리그에서 재회한다. 이번엔 동료가 아닌 적이다. 2006년 나란히 성인 무대에 데뷔한 두 선수는 불과 세 시즌 만에 팀의 주축으로 자리잡았다. 2008년 서울의 준우승과 함께 K리그 베스트11 미드필더 부문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며 명실상부 'K리그 스타'로 떠올랐다. 실력만큼이나 인기도 빼어났다. 이들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구름 팬들이 집결했다. 서울은 2008년 열린 홈 20경기에 39만8757명(평균 1만9938명)의 팬들을 끌어모았다. 2020년 다시 만날 쌍용의 맞대결에 K리그 팬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2008년 쌍용이 K리그에 불러일으킨 뜨거운 열기, 2020년에도 쌍용파워는 '현재진행형'이다. 울산=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