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척=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지난 오프 시즌. KT위즈는 중요한 결단을 내렸다.
11승 투수 라울 알칸타라(28)와의 계약을 포기했다. 대신 빅리그 경험이 풍부한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33)를 전격 영입했다.
창단 첫 5강 진출을 이끌 확실한 1선발의 필요성 때문이었다. 경험과 노련미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데스파이네의 안정감에 무게를 실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KBO 무대 데뷔 첫해 11승을 거둔 파이어볼러가 시장에 풀렸다는 사실은 제법 화제가 됐다. 여러 팀들이 검증된 알칸타라 영입 여부를 놓고 계산에 들어갔다. 결국 외인 투수 두명이 모두 떠난 두산 베어스가 알칸타라를 영입했다.
두산의 선택은 성공적이었다. 잠실의 넓은 외야와 두산의 탄탄한 수비를 만나면서 KBO 리그 2년차 알칸타라는 더욱 강해졌다. 리그에서 가장 빠른 공을 부담 없이 뿌리면서 위력이 배가됐다.
16경기에서 10승1패, 2.79의 평균자책점. 4사구 21개에 스트라이크 아웃 92개로 볼넷/삼진 비율도 이상적이다. 새로운 에이스의 탄생. 넝쿨째 굴러온 복덩이였다.
시즌 초 알칸타라의 가파른 페이스와 달리 데스파이네는 새 리그 적응 과정에 살짝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6월 들어 기복을 보이며 3연패. 들쑥날쑥 한 피칭으로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자신의 생각이 확고한 스타일. 잘 던지다가도 한번에 와르르 무너지기 일쑤였다. 벤치의 우려도 살짝 있었다.
하지만 서서히 적응 과정을 거치며 데스파이네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주위 조언에 귀를 기울이며 7월 부터 자신의 페이스를 회복했다. 7월 들어 지난 4일 고척 키움전까지 7경기 중 6경기에서 퀄리티스타트에 성공하며 빠르게 5승을 쓸어담았다. 어느덧 시즌 9승째(5패). 데뷔 첫해 10승 달성이 코 앞이다.
무엇보다 데스파이네의 장점은 스태미너다. 선발의 최고 덕목인 확실한 이닝이터다.
서른이 훌쩍 넘은 베테랑이지만 짧은 등판 간격과 많은 투구수에도 끄떡이 없는 무쇠팔이다. 4일 현재 리그 최다이닝(111이닝)과 최다 투구수(1857구)를 기록중이다.
잦은 우천 취소 속에서도 꼬박꼬박 자신의 등판 간격으로 마운드에 오르며 젊은 선발진의 체력을 세이브해주고 있다.
데스파이네의 헌신에 이강철 감독도 고마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우리팀 젊은 선발들은 등판 간격이 길 수록 좋다. 소형준도 길어질수록 좋다고 하더라. 김민수나 배제성이도 긴 간격이 낫다. 데스파이네만 괜찮다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최근 데스파이네 덕에 선발진이 5이닝 3실점 내로 막아주면서 선발 야구가 이뤄지고 있다"며 팀 상승세의 비결을 설명했다.
결국 데스파이네의 마당쇠 피칭이 젊은 투수가 많은 KT 선발진에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셈이다. 간과할 수 없는 데스파이네의 영입 효과다.
이강철 감독은 "신기한 건 4일 턴으로 계속 마운드에 오르면서도 100구 이상씩 던진다는 점이다. 대체 뭘 먹고 사는가 신기하다"며 웃었다. 데스파이네의 장점에 대해 이 감독은 "스스로 강약조절을 잘 하는 것 같다. 워낙 좋은 볼을 가지고 있는 피처"라고 평가했다.
알칸타라 역시 팀을 옮기면서 각성효과와 함께 KBO 2년 차를 맞아 한층 안정감 있는 극강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잠실과 두산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 시즌 막판 살짝 페이스가 떨어졌던 스태미너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느냐가 가을 농사 완성의 관건이 될 전망.
두산에 딱 맞는 파이어볼러 알칸타라의 이적과 KT 상황에 딱 맞아떨어지는 마당쇠 데스파이네의 영입.
지난 겨울 KT의 고심 끝 결단은 결국 양 팀 모두에게 윈-윈의 결정이 됐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