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지난 17일 수원 삼성 지휘봉을 내려놓은 이임생 전 감독의 현역 때 별명은 '망치'였다. 헤딩을 잘해 '해머'로 불리다 해머가 한국식 '망치'로 바뀌었다. 망치라는 도구는 강한 이미지를 준다. '붕대투혼'으로 유명한 이임생 감독의 선수 시절을 돌아보면 망치와 퍽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감독 이임생'과 망치는 매치가 안 된다. 못을 박듯 상대를 찍어누르는 파괴적인 공격 전술보단 '안정성'과 '조직력'에 초점을 맞춘다. 소속팀 선수들을 강압적으로 누르기보단 대화를 통해 설득하고 자극을 주는 쪽을 선호한다.
망치보단 언제 뽑힐지, 언제 휠지 모르는 '못'에 가까웠다. 그러다 보니 마음고생이 심했다. 훌훌 털어버리지 못하고 끙끙 앓는 성격이라 심적으로 힘들 거라는 축구인들의 말 대로다. 외롭고, 힘들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이 감독은 지난해 11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보다는 아내와 아이들이 힘들어한다. 아빠가 K리그에 와서 욕만 먹는 모습을 보여줘 미안하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화성FC와의 FA컵 준결승 1차전 기자회견은 이 감독을 가장 잘 나타낸다. 이 감독은 0대1로 충격패한 뒤 "결과를 내지 못하면 책임지겠다"고 울먹이며 사퇴 암시 발언을 했다. 당시 만난 한 축구인은 "이임생은 책임감이 강하다. 한다면 하는 성격이다. 뜸을 들여 신중하게 말하는 것도 그 말에 자신이 책임을 질 수 있는지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몇몇은 이 감독을 '선비'라고 불렀다.
FA컵 우승으로 부임 첫 시즌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 듯했지만, 이 감독은 모든 지도자가 그렇듯, 스트레스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구단 여건상 핵심 공격수인 타가트를 비롯한 주축 선수들을 팔아야 해서, 그에 반해 정상급 선수(또는 자신이 요구하는 선수)를 영입하지 못해서, 성적이 안 나와서, 결과가 좋아도 경기력에 대한 비판이 나와서, OO이 감독 자리를 노린다는 루머가 나돌아서, 늘 노심초사했다.
그럼에도 이 감독은 끝까지 뛰었다. 올해 기대를 모은 공격수 김건희가 슈퍼매치를 통해 뒤늦게 마수걸이 골을 터뜨리자 "건희야!"라고 외치며 부둥켜안은 장면에서 선수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중원에서 버텨줄 선수가 필요하다고 보고 사퇴 얼마 전 은퇴한 모 선수를 만나 직접 현역복귀를 설득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그 정도로 팀을 되살리기 위해 애썼다. 올시즌 리그 11경기에서 '전반 불패'를 기록할 정도로 경기 준비 과정도 나쁘지 않았다. 후반에 뒤집힌 건 체력, 집중력, 반전카드, 용병술 등의 문제로 봐야 한다.
하지만 구단과 이 감독은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FA컵 16강전에서 극적으로 승리한 다음 날 갈라서기로 했다. 정규시간을 기준으로 올해 치른 14경기에서 단 2승(5무 7패), 리그 9위에 머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누군가는 져야 했다. 이 감독은 '남 탓, 모른 척'하지 않았다. '서울만큼은 잡아보고 싶다'던, '전북 천하를 깨고 싶다'던 이 감독은 "감독직에선 물러나지만, 언제나 수원을 응원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빅버드를 떠났다. 수원은 새 사령탑을 찾을 때까지 당분간 주승진 대행체제로 운영할 예정이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