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 용 기자] "트래시 토크를 해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한참 나이 어린 후배가 자신에게 도발을 하고, 거친 말과 행동을 했는데도 고마웠다?
국내 최대 3대3 농구 축제, '컴투스 KOREA 3X3 프리미어리그 2020'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7일 경기도 고양 스타필드 스포츠몬스터 특설 코트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라운드를 끝으로 2020 시즌을 마쳤다.
최종 우승팀을 가리는 플레이오프 라운드에서는 정규리그 2위 한솔레미콘이 마지막 승자로 기록됐다. 한솔레미콘은 결승전에서 정규리그 1위 아프리카 프릭스를 만나 21대19로 신승, 우승상금 1200만원의 주인공이 됐다.
손에 땀을 쥐는 승부였다. 한솔레미콘은 스타 군단이었다. 지난 시즌까지 남자프로농구(KBL) 최고 스타로 군림한 전태풍과 훈남 센터 이동준이 버티고 있었다. 여기에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 의무를 수행중인 현역 KBL 선수 이현석(서울 SK)까지 참여했다.
아프리카의 경우 이름값에서는 밀릴지 몰라도, 선수 개개인의 능력과 조직력으로 따지면 한솔레미콘을 넘어설 팀이었다. 3대3 농구 최고 스타 중 한 명인 단신의 가드 한준혁과 정규리그 MVP 센터 노승준, 3대3 농구 국가대표 김동우가 있었다.
결승전의 백미는 전태풍과 한준혁의 매치업이었다. 한준혁이 경기 시작부터 전태풍에게 강한 압박 수비를 펼치고, 공격과 수비를 성공시킬 때마다 전태풍을 향한 도발적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후 두 사람이 마치 1대1 '쇼다운' 경기를 펼치 듯 자존심 싸움을 벌였다. 강한 몸싸움으로 인해 3대3 농구 적응에 애를 먹던 전태풍의 눈에서 불꽃이 튀기 시작하더니, 전성기 시절 보여주던 화려한 퍼포먼스로 한준혁을 압도해나가기 시작했다. 경기 중반 한준혁을 제친 후 결정적인 클러치샷을 성공시킨 전태풍은 기다렸다는 듯 한준혁 앞으로 다가가 '넌 나에게 안돼'라는 메시지를 주는 듯한 세리머니를 펼쳐 코트를 용광로로 만들었다.
전태풍은 결승전에서 팀이 만든 21점 중 혼자 11점을 넣는 대활약을 펼치며 MVP가 됐다. 사실 객관적 전력에서는 아프리카가 앞섰는데, 전태풍 변수가 결승전을 지배했다. 한준혁의 도발이 경기 흐름을 완전히 바꿔버린 것이다. 전태풍은 "한준혁이 트래시 토크를 해줘 너무 고마웠다. 죽어있던 내 농구 열정을 살려줬다. 10년 전 뜨거울 때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나를 도발하는 게 전략이었다면 그건 100% 실수였다"고 말하며 "나이 먹고 KBL에서 은퇴했지만, 아직 살아있다는 걸 보여줘 이번 우승이 기쁘다"고 밝혔다.
한준혁은 2득점에 그쳤지만, 전태풍을 상대로 기죽지 않고 배짱있는 플레이를 펼쳐 박수를 받았다.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상대를 도발하고, 화려한 세리머니를 펼치는 것은 프로 스포츠를 즐기는 팬들에게 큰 볼거리를 주는 것이다. 이것도 실력이 있고, 용기가 있어야 할 수 있는 플레이다. 전태풍과 한준혁 두 사람 모두 경기 중 코트에서는 으르렁댔지만, 경기가 끝나자마자 서로를 인정하는 스포츠맨십을 보여줬다.
한편 결승전에 앞서 열린 3, 4위전에서는 박카스가 데상트를 21대19로 꺾고 3위를 차지하며 프리미어리그 2020 시즌이 종료됐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