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첫 연기, 첫 영화. 첫술에 배부를 수 없죠."
판소리 뮤지컬 영화 '소리꾼'(조정래 감독, 제이오엔터테인먼트 제작)에서 사라진 아내 간난(이유리)을 찾아 나선 지고지순한 소리꾼 남편 학규를 연기한 국악인이자 배우 이봉근(37). 그가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스포츠조선과 만나 '소리꾼'에 대한 비하인드 에피소드와 근황을 전했다.
한국 영화 명작으로 꼽히는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93) 이후 27년 만에 제작된 정통 판소리 뮤지컬 영화 '소리꾼'은 판소리 고법 이수자 고수(鼓手: 북 치는 사람)이자 위안부를 소재로 358만명의 관객을 사로잡은 '귀향'(16)의 조정래 감독 신작으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가장 한국적인 한(恨)과 해학의 정서를 조선팔도의 풍광명미와 민속악의 아름다운 가락으로 빚어냄과 동시에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천민 신분이었던 소리꾼들이 겪는 설움과 아픔을 그린 가장 한국적인 뮤지컬 영화로 존재감을 드러낸 것.
특히 '소리꾼'은 국악계 명창 이봉근의 첫 스크린 데뷔로 화제를 모았다. 이봉근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음악과 출신 국악인으로 2012년 KBS 국악대상 연주상(앙상블 시나위),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 등을 수상하며 국악계 스타로 떠올랐고 KBS2 예능 '불후의 명곡'에 출연해 판소리 명창의 면모를 드러냈다. 이런 그가 '소리꾼'을 통해 정통 스크린 연기에 도전해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첫 연기임에도 다채로운 감정 연기를 소화한 것은 물론 절절한 감정을 노래에 담아 보는 이들의 공감을 높인 이봉근은 '소리꾼' 속 학규와 완벽한 싱크로율을 완성하며 첫 스크린 데뷔 신고식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이봉근은 자신의 첫 스크린 연기에 "내 인생 첫 영화인데 굉장히 떨린다. 나 역시 '소리꾼'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처음 봤는데 '하나의 영화가 나오기까지 이렇게 많은 과정이 있구나' 싶었다. 우리 소리가 오롯하게 드러나는 영화이지 않나 싶어 기쁜 마음이 크다. '소리꾼' 출연은 오디션을 통해 출연하게 됐다. 주변 지인들에게 '소리꾼' 오디션 추천을 많이 받았고 소리꾼이 아니면 할 수 없겠다 싶어서 많은 준비를 해 오디션에 참여했다. 아무래도 소리를 하면서 연기를 동시에 하기 쉽지 않았다. 그동안 무대 연기를 많이 했는데 스크린 연기는 조금 달라 사전에 준비를 많이 해 오디션을 봤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보통 무대 연기는 한쪽 무대만 사용하고 전달이 목적이기 때문에 발성을 크게 한다. 또 관객이 바로 앞에 있기 때문에 현장성이 있다. 하지만 스크린 연기는 지금처럼 말하듯이 평상시 말투로 해야 한다. 아무래도 무대 연기와 간극이 느껴져 어려웠다. 원래 무대에 올라갈 때 전혀 긴장하지 않는데 영화는 긴장을 많이 했다. 오히려 연극 오디션이었으면 정말 편하게 했을 것이다. 스크린 연기는 너무 다른 영역이라 굉장히 많이 떨었다. 그런데 그때 심사를 했던 분들은 그런 떨리는 내 눈빛에서 학규의 눈빛을 봤다고 하더라. '소리꾼' 합격 통지를 받고 너무 좋은 반면에 부담스럽기도 했다. 큰일을 저지른 것 같았다. 합격 소식을 받고 우리나라 사극 영화를 많이 찾아봤다"고 설명했다.
국악인과 동시에 배우로 활동하게 된 이봉근. 그는 "원래 스크린 연기에 뜻은 없었다. 이번 영화를 통해 매력을 찾게 됐다. 박철민 선배가 '현장의 하늘이 정말 아름답다. 어느 순간 깨닫는 날이 될 것이다. 그걸 그리워해라'라는 이야기를 해줬다. 현장의 긴장감에서 오는 희열감이 있더라. 그 말을 왜 하셨는지 이제 알겠더라. 연기 욕심이 생겼다"며 "'소리꾼' 시사회를 보면서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 사람이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데 나 역시 그렇다. 첫술에 배부른 다면 굉장히 자만하게 될 것 같다. 감사하더라. 스스로 부족한 부분이 보이니까 또 욕심이 생겼다. 다음에 기회가 생긴다면 정말 많이 준비를 하고 싶다. 연기 욕심이 생겼고 기회가 된다면 앞으로도 연기를 계속하고 싶다"고 밝혔다.
판소리 영화의 명작인 '서편제'와 비교에 대해서도 겸손의 말을 잊지 않은 이봉근이다. 이봉근은 "사실 '소리꾼'이 '서편제'와 비교 대상 자체가 된다는 게 기쁘다. 너무 감사하다. '서편제'는 어릴 때 엄청 많이 본 작품이다. '서편제'를 연기한 오정혜 선생님도 너무 존경하고 실제로 내 은사다. 이번 영화를 준비할 때도 많은 도움을 주고 조언도 받았다"고 답했다.
그는 "다만 '서편제'와 '소리꾼'은 결이 조금 다른 것 같다. '서편제'에서 다룬 것들은 기존에 만들어진 소리와 소리꾼의 고민이 많이 들어간 반면에 우리 '소리꾼'은 가족애와 위로를 전하기 위한 소리의 이야기를 많이 다뤘다. '소리꾼'이 판소리의 역할을 좀 더 보여주는 것 같다. 더 나아가서는 '심청가'라는 노래의 기원이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봉근은 판소리를 시작하게 된 남다른 사연도 털어놨다. 그는 "나는 전북 남원 출신인데 고향 자체가 '춘향가' '흥부가'의 발상지다. 아버지가 서예를 하고 집안 자체가 서예가가 많이 배출됐다. 원래 아버지께서는 나를 서예가로 자라길 바라셨는데 나는 왼손잡이에 악필이라 아버지께서 상심이 크셨다. 고민 끝에 내게 판소리를 제안하셨다. 본인이 판소리를 취미로 하셨는데 본인이 배우시고 나에게 시켜보시더라. 어릴 때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판소리를 하게 됐다. 중학교 2학년 때 판소리를 시작했는데 사실 어렸을 때는 판소리를 싫어했다. 처음에는 왜 하나 싶었는데 판소리를 배우다 보니 성취감이 있더라"고 말했다.
이어 "판소리의 테크닉을 하나씩 습득할 때마다 희열감과 성취감이 있다. 너무 뿌듯했다. 물론 시련도, 고민도 있었다. 판소리를 사랑하게 된 시기는 대학교 들어와서 첫 공연을 할 때였다. 내 이름을 걸고 한 공연이었는데 무대에서 느낀 희열감이 너무 좋았다. 무대에서 내려와서 너무 좋아 손을 떨었다. 소리 하는 분들은 아마 내 이야기에 공감을 많이 것이다"고 전했다.
또한 "지금은 아버지께서 너무 좋아하신다. 남원에도 영화관이 딱 한 곳 있는데 아마 아들이 출연한 영화라며 플래카드를 크게 걸 것 같다. 지금 분위기로는 소 한 마리를 잡아 잔치를 여실 것 같다. 요즘 예능 출연도 하고 있는데 자꾸 친척분들께 자랑을 많이 하시더라. 집안의 자랑이 됐다"고 웃었다.
마지막으로 이봉근은 "소리꾼으로서 이런 영화가 나와서 너무 좋다. 나중에 어린 친구들에게 우리 영화를 많이 보여주고 싶다. 조정래 감독이 '소리꾼'을 12세 관람가로 만들었는데 어린 친구들부터 어른까지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우리 영화는 어린 친구들이 볼 수 있게 잔인한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자극적인 장면을 좋아하는 관객에게는 우리 영화가 밍밍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어린 친구들에게는 정말 좋을 것 같다. 또 판소리에 대한 매력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판소리에 대해 1도 모르는 분들이 봐도 좋은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난 뒤 판소리를 찾아보고 듣고 싶으실 것 같다. 평소 판소리의 대중화에 대한 질문을 많이 듣는데, 아무래도 '소리꾼'이 대중화의 가교 역할을 할 것 같다"고 자부했다.
'소리꾼'은 소리꾼들의 희로애락을 조선팔도의 풍광명미와 아름다운 가락으로 빚어낸 작품이다. 이봉근, 이유리, 김하연, 박철민, 김동완, 김민준, 김하연 등이 출연했고 '두레소리' '파울볼' '귀향'의 조정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오는 7월 1일 개봉한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리틀빅픽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