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롯데 허문회 감독은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다. 취재진 브리핑에서도 꼭 필요한 이야기만 하는 편.
하지만 평소보다 길어지는 테마가 있다. 타격 철학에 관련된 이야기다.
허감독은 31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주말 3연전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롯데 타자들의 초구 공략' 이야기가 나왔다. 허 감독은 분명하게 자신의 철학을 이야기 했다.
"초구부터 노리는 공이 있으면 결과 신경 쓰지 말고 강하게 치라고 했습니다. 그건 캠프 때 부터 저희 팀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었어요. 상대 투수가 초구부터 볼카운트 잡으러 들어오는 스트라이크를 (편하게) 던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죠."
예외는 없다. 상황에 따라, 타자에 따라 원칙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스리볼이든 투볼이든, 9회말이든, 어떤 타자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안 치려고 하는데 볼이 되는 건 그저 운일 뿐이죠. 적극적으로 치려고 하다 볼을 골라내는 게 바로 실력입니다. 그래야 그 타자에게 미래가 있죠. 방향을 정확하게 이야기 할 필요가 있습니다."
리더가 일관성을 유지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특히 야구 처럼 결과론과 운이 강력하게 지배하는 스포츠에서는 더욱 그렇다. 상황에 따라, 결과에 따라 선수 탓 하기 쉬운 것이 또 감독 자리다.
하지만 타석에서의 '적극적 자세'에 관한 허 감독의 지도 철학은 분명했다. 일관성 있는 지도 철학이 오랜 인고의 세월을 거쳐 진주 같은 보석을 품어낸다. 허 감독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1년 끝나봐야 결과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당장 성적이 안 난다고 해서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실제 1일 현재 롯데 타선은 초구 공략 비율이 119차례로 10개 구단 중 가장 높다. 아직까지 성공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초구 공략 팀 타율은 0.293으로 삼성(0.273) 다음으로 낮다.
초구 공략 빈도와 타율이 가장 높은 선수는 한동희(19타수8안타, 0.421)다. 정보근(0.375), 손아섭(0.353), 김준태 이대호(이상 0.333), 전준우(0.308)가 뒤를 이었다.
아직 효과를 판단하기는 이르다. 이른 볼 카운트 적극적 공략이 맞혀 잡기에 능한 상대 투수의 롱런에 도움이 될수도 있다. 반대로 상대 투수를 신경쓰이게 해 투구수를 늘릴 수도 있다.
31일 두산 에이스 플렉센은 최고 154㎞의 광속구와 146㎞ 고속슬라이더의 강력한 구위에도 롯데 타선을 상대로 초구부터 적극적 승부를 펼치지 못했다. 완벽한 제구를 의식하다 볼이 많았다. 투구수가 일찌감치 100구에 달하며 5회까지 밖에 던지지 못했다.
업다운이 있지만 분명한 건 롯데 야구가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발전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전진을 위한 첫 걸음을 뗄 수 있는 용기. 로이스터 감독이 그토록 심고자 했던 '노 피어' 정신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 팀 색깔을 바꾸려는 노력. 허문회 감독의 시선은 먼 곳을 향해 있다.
잠실=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