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암=스포츠조선 김가을 기자]"가슴이 벅차다."
절친한 선후배, 그러나 승부의 세계는 냉정했다. 승리 앞에서는 형님도 아우도 없었다.
'독수리' 최용수 감독(47)이 이끄는 FC서울과 '빠다볼' 김남일 감독(43)이 지휘봉을 잡은 성남FC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서울과 성남은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하나원큐 K리그1 2020' 4라운드 대결을 펼쳤다.
경기 전부터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얽히고설킨 인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합작한 영웅이다. 최 감독은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공격을 이끌었고, 김 감독은 수비의 핵심으로 상대를 괴롭혔다. 이들의 인연은 은퇴 뒤에도 계속됐다. 지난 2017년, 장수 쑤닝(중국)의 사령탑이던 최 감독은 김 감독을 코치로 영입한 바 있다.
시간이 흘렀다. 이제 두 사람은 감독 대 감독으로 그라운드에 섰다. 김 감독이 올 시즌을 앞두고 성남의 지휘봉을 잡으면서 매치업이 성사됐다. 절친한 선후배의 대결. 팬들 만큼이나 양 팀 사령탑의 각오도 남달랐다. 김 감독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서울과의 대결이 기대된다. 그냥 이기고 싶다"고 선전포고했다. 이에 최 감독은 "더 도발해 달라"고 응수했다.
뚜껑이 열렸다. 두 사람이 들고 나온 카드는 축구는 현역시절 플레이 스타일과 닮은 듯 달랐다.
최 감독은 '독수리'라는 별명에 걸맞게 날카로운 한 방을 노렸다.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기본적으로는 스리백을 활용하지만, 수비시에는 순간적으로 파이브백을 형성했다. 성남 공격을 완전히 차단했다. 성남은 전반 44분에서야 첫 슈팅을 기록했다. 서울에서만 9년. 최 감독은 "그동안의 경험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며 후배를 철저히 막아 세웠다.
현역시절 '진공청소기'로 불렸던 김 감독은 서울을 상대로 수비에 힘을 잔뜩 줬다. 시작부터 파이브백으로 서울의 공격을 차단했다. 중원에서 볼 소유 시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경기에 임했다. 여기에 패기로 무장했다. 2001년생 '초신성' 홍시후에게 2연속 선발 기회를 줬다.
경기는 팽팽했다. 방패와 방패의 대결로 치열하게 전개됐다. '선수비 후역습' 전술로 경기를 풀었다. 두 팀은 상대의 골문을 노렸지만 쉽지 않았다. 팽팽하던 '0'의 균형은 후반 44분 극적으로 깨졌다. 성남이 웃었다. 후반 교체 투입된 토미가 결승골을 뽑아내며 팀에 리드를 안긴 것. 성남은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발휘해 1대0 승리의 마침표를 찍었다. '후배' 김 감독은 선배를 누르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성남은 개막 4경기 무패행진(2승2무)을 달리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경기 뒤 김 감독은 "최 감독님과 중국에서 6개월 동안 생활을 함께했다. 스타일을 안다. 어떻게 나올 것으로 어느 정도 예상했다. 가슴이 많이 벅차다. 선수들에게 고맙다. (최 감독에 대한) 도발이라기보다는 기싸움에서 지고 싶지 않았다. 자극이 어떤 자극인지 궁금하다. 경기 뒤 악수가 오늘 첫 인사였다. 감독님께서 축하해주셨다"고 소감을 말했다.
연승을 이어가지 못한 서울의 최 감독은 "김 감독이 감독으로 팀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가는 것 같다. 선수 구성이나 상대를 힘들게하는 노하우를 쌓아가고 있는 것 같다. 고비가 있겠지만, 더 성공하고 성장할 수 있는 김남일 감독이 되길 바란다"고 덕담을 건넸다. 두 사령탑은 오는 8월 1일 탄천에서 리턴매치를 갖는다.
상암=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