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존시대' 연 지성환, 현병철, 홍석한 그리고 전설이 된 조호성
2002년 이후 엄인영이 주춤할 무렵, 즉 창원팀이 수도권에 밀리기 시작할 무렵 등장한 지성환(6기)은 한 차원 다른 기량과 함께 돌풍의 주역으로 떠오른다.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1㎞ 독주 금메달리스트인 지성환은 페달링부터 남달랐는데 스타트를 할 때 엉덩이를 들지 않는데도 순간 스피드가 뛰어났고 종속은 한 바퀴 승부를 나서도 떨어지는 법이 없었다.
죽마고우였던 원창용을 따라 창원에 둥지를 튼 지성환은 단숨에 경륜 4대 천왕(엄인영 주광일 김보현 원창용)을 물리침과 동시에 밀레니엄 시대 첫 그랑프리 우승자가 되었고 엄인영에 흔들렸던 창원팀을 다시 무적의 반열에 올려놓으며 경륜계를 사실상 평정했다.
이는 벨로드롬에서 처음으로 1인 독주시대가 열리게 된 것인데 팬들은 그를 '경륜지존'이라 불렀다. 하지만 고질적인 허리 부상으로 수술대에 오른 지성환은 이후 급격히 기량이 떨어지며 마크 추입 위주의 평범한 선수로 전락해 경륜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지성환의 바통을 이어받은 선수는 국내 최고의 스프린터란 찬사를 받던 현병철(7기)과 홍석한(8기)이다. 현병철은 2001년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하고 이어서 홍석한은 2002년과 2003년 '두 번은 허락하지 않는다'는 그랑프리의 불문율을 깨고 2연패에 성공한다.
두 선수 모두 지성환의 전성기 못지않은 활약을 펼쳤는데 특히 홍석한은 초등학교 시절 왼쪽 다리 마비 증세를 호전시키기 위해 올라탄 자전거가 인생을 바꿔놓은 케이스라 화제가 되었다. 또한 2016년에는 누구도 엄두 못 낼 500승이라는 대업을 이루었고, 현재도 그 숫자를 늘려나가고 있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경륜의 영웅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원창용, 지성환, 현병철, 홍석한 그리고 뒤에 나오는 조호성은 모두 실업팀 기아자동차, 중앙대, 국가대표 출신이란 공통점이 있다. 개인의 면면은 이견이 없을 만큼 화려하지만 사실 이들은 정면 승부 횟수가 많지 않았고 자연스레 1인자 계보를 이어갔다. 과거 매 회차마다 주인공이 바뀌는 5인방, 경륜 4대 천왕 시절과 달리 기나긴 1인 독주시대는 보는 재미 면에서 덜한 감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국내 사이클 선수론 가히 '불세출'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조호성.
만약 경륜 역사를 크게 양분화한다면 조호성의 등장 이전과 이후로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등장으로 벨로드롬이 떠들썩했는데 중장거리 출신은 경륜에서 통할 수 없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조호성은 세계대회(월드컵) 우승자답게 데뷔 초부터 승승장구한다.
처음 출전한 2005년 잠실 경륜장에서 열린 마지막 그랑프리 대상경륜을 접수했고 광명으로 옮긴 후에도 2년 연속 우승하며 그랑프리 3연패라는 전인미답의 고지에 올라서게 된다. 그랑프리뿐 아니라 조호성은 최다 연승, 상금 등 경륜의 모든 기록들을 갈아치우며 명실 상부한 '벨로드롬의 황제'로 등극했다.
조호성은 그야말로 약점이 없었던 선수였다. 전법은 선행부터 추입까지 자유자재였고 경주 중 갑작스러운 위기 대응능력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한때 조호성의 연승을 저지하기 위해 특정지역 서너 명이 견제해도 특유의 각력과 신출귀몰한 전술로 응수하며 많은 명승부를 연출하기도 했다.
여기에 수도권은 물론 전국구를 아우르는 리더십은 물론 사생활적 측면에서도 혹독할 만큼 관리를 해왔다. 프로 경륜 선수로서의 품위를 격상시키려 한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이런 완벽한 성격이 때론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했다. 하지만 남다른 노력 덕분인지 후배들에겐 경기력 외적으로도 가장 귀감이 되는 선수 1순위로 꼽힌다.
조호성은 현재 서울시청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활약하며 지도자로서도 성공 가도를 달릴 뿐 아니라 틈틈이 각종 동호회 행사에도 나서며 사이클 저변 확대에도 앞장서고 있는 모습이다.
2008년 조호성은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갑작스레 은퇴를 선언했다. 때문에 벨로드롬은 절대 강자가 없는 춘추전국시대에 돌입하게 된다. 중앙대-기아자동차 출신들이 사라지고 80년 이후 출생자들의 전성시대가 열리며 이전엔 보기 어려웠던 4점대의 무시무시한 고기어도 출현하게 되었다.
수도권과 경상권으로 양분되었던 지역 구도에 호남팀이 가세하는 등 개인 못지않게 지역 다툼 또한 활발해졌다. 노태경, 김민철, 송경방, 이욱동의 접전을 뒤로 이명현이 1인자 계보를 2011년∼2012년까지 이어갔고 이명현이 기흉으로 주춤한 이후엔 박병하, 박용범, 이현구 등이 권좌 다툼을 벌이다 최근 4년은 또 정종진의 독식이 이어지는 형국이다. 과거에 비하면 선수층이 확실히 두터워진 것도 알 수 있다.
2010년 이전 정상을 등극한 선수와 은퇴선수를 중심으로 이야기의 초점을 맞춘 '최강경륜'의 박창현 발행인은 "이 외에도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주특기나 자기 장점이 확실한 선수들이 부지기수지만 훗날 경륜 명예의 전당이 생긴다면 꼭 올려놓고 싶은 대표적 명단이다. 앞으로 간간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최근 소식도 들을 수 있기를 팬들과 함께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