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27일 부산 사직구장.
삼성 라이온즈전을 앞두고 한창 훈련을 진행하던 롯데 자이언츠 선수 사이에 정 훈(33)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정 훈은 지난 16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을 앞두고 내복사근 파열 진단을 받고 부상자 명단에 등재된 상황. 회복에 한 달 가량이 소요된다는 진단을 받은 터라 여전히 출전이 어려운 상황. 하지만 정 훈은 훈련복을 챙겨 입고 배트까지 든 채 그라운드에 나섰다. 곧 더그아웃 앞에 서 있던 허문회 감독을 만난 정 훈은 한동안 이야기 꽃을 피운 뒤 자리를 떠났다.
허 감독은 "정 훈에게 '뭐하러 나왔느냐'고 하니 '그냥 왔다'고 하더라"며 "타격 메커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혼란스러워하는 부분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길래 그 부분에 대해 한동안 이야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대목도 있었다. 허 감독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정 훈이 '감독님, 어제 보니 표정이 안 좋으시더라'고 하더라. 나도 '그래, 내가 좀 그랬지. 이야기해줘서 고맙다'는 말도 했다"며 "나도 사람인지라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지켜보다 순간적으로 그런 장면이 나올 때가 있는데, 선수들에게 이야기를 좀 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정 훈이 나서서 이야기를 해주더라"고 웃었다.
감독은 '극한직업'으로 분류된다. 매일 승패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야구 사령탑들의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26일 사직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롯데는 7회까지 0-0 동점을 이어가다 8회말 터진 이대호의 적시타에 힘입어 1대0으로 이겼다. 허 감독에겐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승부. 스스로 "나도 사람인지라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라고 할 정도였다. 이 상황을 정 훈은 위트 있게 풀어냈고, 허 감독도 흔쾌히 받아주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허 감독은 이런 팀 분위기에 큰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정 훈 뿐만 아니라 베테랑 선수들이 스프링캠프 때부터 지금까지 솔선수범해 훈련에 임하고 후배들을 이끌어주고 있다"며 "사실 부임 직후 기대했던 모습 이상이어서 적잖이 놀랍고, 그래서 더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어디까지나 경기를 만드는 것은 선수들이다. 나나 코치진은 더 좋은 활약, 경기를 할 수 있도록 도울 뿐"이라며 "선수들 스스로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훈련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너무 좋다. 홀로 사무실에 있을 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그라운드에 나오는 순간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훗날 이 선수들과 함께 한 시간을 돌아볼 때, 정말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드러냈다.
부산=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